내가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가수이자 화가로서, 그리고 연예인으로서 유명한 조영남 씨가 2016년경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렸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평론가 진중권 씨는 조영남의 작품들은 모두 개념미술의 영역에 속하며 "아이디어와 그것을 관철시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개념미술이 뭔지 잘 몰랐던 나는 그가 2012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10121952555) 읽으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것과 '정말 그러하겠다' 하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 바 있었다.


진중권 씨는 해당 기고문에서 예술은 결국 물질을 벗어나 정신으로 옮겨가는데, 이에 따라 물질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닌 비물질적인 관념을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게 됨을 현대미술 발전사에 비추어 역설하였다. 저 유명한 뒤샹의 '샘'을 보아도 물질적 오브제(objet)의 창조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창안한 것이 예술사적으로 더 가치있는 행위가 아니었던가? 벽에 문양을 그릴 때 사용되는 기하학적 형태의 공식만 제공한 솔 르윗(Sol LeWitt), 구상에 대한 개념 설명이 적힌 타블로(tableaux)를 판매했던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드로잉과 작업구상을 모아 노트에 꽂아 넣었던 멜 보크너(Mel Bochner)의 예를 보면 이들의 예술행위는 창작(작곡가의 몫)과 실행(연주자의 몫)이 분리된 음악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솔 르윗은 "개념미술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예술가가 예술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할 때, 그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생각이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라고 했는데 개념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아주 결정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진중권 씨는 기고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한마디로 창작은 ‘제작’의 의무에서, 작품은 ‘재료’의 감옥에서, 수용은 ‘지각’의 관례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요즘 이러한 개념미술의 개념이 과학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산다. 현재의 과학연구는 전통적으로 가설 설정과 검증 및 결론 도출에 이르는 실험 영역과 남들에게 이를 이해시킬 수 있도록 글이나 그림, 영상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는 발표 영역, 그리고 다른 연구자와의 협업 및 토의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하는 협동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 영역은 과학적 사고라는 것이 태동하던 시기로부터 점차 확립된 연구자들의 다양한 기본 행동들을 잘 묶어서 나타내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과학 연구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세 영역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누군가에게 전담시킬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실험만 하고 발표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연구 세계에서 도태되었다. 협업 및 토의를 하지 않는 연구자는 과학 사회에서 소외되었고 크나큰 발전을 이룰 기회를 잃게 되었다. 비록 분업(分業)이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서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모든 것을 떠맡게 하지는 못했고,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노예가 아닌 이상 대학원생 역시 실험과 발표, 협동에 능동적으로 동시에 참여하는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어느 한 영역만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연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들어 굉장한 변화가 생겼으니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을 겸비한 기계의 급속한 발전이다. 과학연구 영역의 많은 부분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최근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논문(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0-17266-6)과 같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다양한 유기화학 합성 반응들을 기계가 도맡아 척척 진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을 대체할 수준은 아니지만 인간이 관여해야 하는 상황이 엄청나게 줄어들게 될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입력되는 절차만을 수행하는 기계에서 원하는 분자식을 그리면 해당 분자를 합성할 수 있는 경로를 역계산하여 ㅡ 이를 역합성 분석(retrosynthetic analysis) ㅡ 가장 가능성 있는 합성 방식을 제안하고 이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기계로 발전하고 있으니, 이제 사람이 열심히 인터넷과 논문 서적을 뒤적여가며 합성 반응을 고안해내야 하는 수고로부터 해방될 날도 머지 않았다.


발표는 어떠한가. 요즘 음악과 뉴스기사, 심지어 소설도 인공지능이 그럴 듯하게 써내려간다. 감성을 필요로하는 작품들도 써내려가는 인공지능에겐 형식과 문투, 그리고 데이터의 표현 방식이 어느 정도 틀이 갖춰져 있는 과학적 글쓰기란 실험 결과만 주어진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들끼리는 인간의 대화 및 토의보다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의 접목 및 창안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겸비한 실험 로봇들의 수행능력이 점차 진화함에 따라 과학연구 대부분의 영역을 전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화합물이라는 물질을 다루고 데이터를 자원처럼 활용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직까지는) 다룰 수 없는 것들을 다뤄야 할 것인데 그것은 기계가 아직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관념적인 비물질적 "연구 개념"으로 압축된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개념과학(conceptual science)'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짧게 정의하자면 개념과학은 실험과정, 원료물질에 대한 고려 이전에 선행되는 연구자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솔 르윗의 발언을 패러디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개념과학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연구자가 과학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할 때, 그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생각이 연구를 수행하는 기계가 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교수-대학원생의 분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테면 개념과학자 교수는 오직 가설에 기반한 구상을 할 뿐이다. 그 구상이 적절한 형태로 도입되면 인공지능 로봇은 그에 맞추어 구체적인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각종 원재료들을 준비한다. 실험은 수행되며 이에 따른 결과는 명료하게 정리되어 가설 검증에 사용된다. 검증에 실패하면 기계는 각종 변수를 체계적으로 조절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고 결국 검증에 성공한 실험은 논문으로 작성됨과 동시에 녹화된 영상으로써 일반에 공개된다. 해당 정보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로봇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그들이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실험에도 도움을 주는 빅 데이터의 일부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교수는 오직 자리에 앉아서 개념을 창안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과학연구냐고?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인간이 수행하는 것이 불완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정착될 때쯤에는 ㅡ 생각해 보라. 자율주행이 완전하게 정착된 동네에서는 사람이 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게 오히려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인식되지 않겠는가? ㅡ 자리에 앉아 구상을 하는 행동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과학 연구의 전부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면 개념과학이 등장하여 미래 세계 과학의 주류가 된다면 어떨까? 가령 그런 세계에서는 페니실린(Penicillin)의 발견과 같은 우연에서 비롯된 과학적 결과물의 산출이 가능할 것일까? 프로그램 상 약간의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 기계의 특성상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다소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개념과학 연구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구자는 현재와 같이 수많은 공식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여 문제를 잘 푸는 '우리 시대의 범생이'가 아닌, 진실로 독창적이고 것들을 생각해내는 '괴짜'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개념과학의 시대에서 가장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기계가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순간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 인류는 과학 연구에서 배척될 것인데, 기계가 이 수준에 도달했다면 이미 인류는 굉장히 많은 부분을 기계에 양보한 채, 혹은 의존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념과학은 어찌 보면 인류 지성의 마지막 보루이자 본질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연구자들 스스로가 자문해보자: 나는 개념과학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계가 맡게 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본질적인 개념을 구상하며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념을 구현하기 위한 연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인가? 나는 연구자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계에 밀려 도태될 사람인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