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언제 개발되었을까? 어느날 고분자화학을 전공한 내게 이런 질문이 주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글쎄, 슈타우딩거(Staudinger)가 처음으로 고분자 구조를 제시했을 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캐로더스(Carothers)가 우연히 나일론을 발견했을 때? 그런데 이것은 화학적인 의미의 고분자(高分子, polymer)의 이야기고, 재료 측면에서의 플라스틱(plastic)을 개발한 것은 다른 이야기 아닌가?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이 고분자에 대한 이해조차 전혀 없는 상태였을지라도 경험상 이러한 것들을 섞어 뭔가 만들었더니 기존의 금속 혹은 세라믹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 무엇인가가 만들어졌다고 보고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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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플라스틱의 대표적인 예인 생수 페트병]


그럼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플라스틱이 대체 뭔지 이해부터 하고 넘어가야겠다. 플라스틱이라는 영단어는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πλαστικός)에서 온 말로 ‘성형(成形)이 가능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어떤 물체가 플라스틱이다!’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이 돌처럼 그 형태가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 아닌, 어떤 조건에 따라 흐물거리게 했다가 다시 딱딱하게 굳힐 수 있는 그런 물성을 가지는 것으로 기대되는 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거대한 분자량을 가지는 물질들이 이러한 특성을 보이게 되므로, 흔히 플라스틱은 고분자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플라스틱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되는 용어라기보다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물질들을 아우르는 광의(廣義) 개념의 실생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이라는 단어 자체가 포함하는 고분자 화합물의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개념을 화학적으로 어디까지로 한정하는가에 따라 개발된 시기를 대략적으로 논할 수 있다.


만일 자연계에 존재하는 고분자들도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본다면 이미 인류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고대로부터 보석으로 취급된 호박(琥珀)도 일종의 플라스틱으로 볼 수 있고, 성경에 등장하는 유향(乳香) 역시 식물에서 추출된 플라스틱 물질이다. 또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옛날부터 씹어왔던 고무 역시 플라스틱 물질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이렇게 자연계에서 유래한 천연 고분자는 플라스틱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플라스틱은 산업적으로 생산된 제품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물질이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려면 사람의 손에 의해 일정 부분 인위적으로 합성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에서의 최초의 플라스틱은 언제 개발되었을까? 역사가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영국의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가 개발한 파크신(Parkesine)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으로 꼽는다. 알렉산더 파크스는 천연 고분자로 식물계에서 얻을 수 있는 셀룰로스(cellulose)에 질산과 약간의 용매를 섞어 반응시켜 질산셀룰로스(nitrocellulose)를 합성하였고, 이것을 고온에서 가열한 뒤 용매를 모두 날려버리면 딱딱하게 굳어 원하는 모양대로 성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질산셀룰로스에 파크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1862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였고, 이 신기한 물질에 만국박람회 측은 동메달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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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과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성형된 파크신 제품]

(출처는 https://www.bbc.com/news/magazine-27442625)


이 최초의 플라스틱인 파크신의 원료 물질은 식물계에서 얻은 천연 물질인 셀룰로스인데, 셀룰로스는 그 자체로 고분자이다. 따라서 혹자는 파크신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합성 플라스틱이라고 부르기에는 2% 부족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 분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 최초의 플라스틱을 논하려면 애초에 고분자가 아닌 것에서부터 고분자를 만듦과 동시에 플라스틱의 성질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최초의 플라스틱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1907년, 벨기에 태생의 미국 과학자인 리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가 개발한 베이클라이트(Bakelite)이다. 그는 독일의 과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Adolf von Baeyer)가 쓴 논문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여기서 폰 바이어는 페놀(phenol)과 폼알데하이드(formaldehyde)를 섞었더니 웬 녹지 않는 단단한 물질이 형성되는 바람에 실험 기구들을 온통 못쓰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1907년에 베이클랜드가 남긴 연구노트에 따르면, 그는 페놀과 폼알데하이드를 다양한 나무조각들과 섞은 뒤 고온 하에서 반응을 보냈고, 그 결과 굉장히 단단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베이클랜드는 1909년에 미국 화학회에서 베이클라이트의 합성에 관한 강연을 진행헀고, 이듬해에 작은 산업 시설을 갖춘 뒤 180 L의 베이클라이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유자재로 성형이 가능한 베이클라이트는 셀룰로스 기반의 파크신보다 훨씬 단단했고,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제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엄청나게 다양한 베이클라이트 기반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결과 차츰 온갖 금속과 목재 제품들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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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클라이트의 합성 경로를 나타낸 화학식]

(출처는 https://bakelitegroup62.wordpress.com/2016/09/25/structure/)


정리하자면, 인류가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은 19세기 중반, 그리고 최초의 합성플라스틱은 20세기 초반에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을 진짜 최초로 보는가는 플라스틱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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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