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기 전 국회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들며 온국민의 관심을 여의도에 집중시킨 법안이 바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줄여서 테러방지법)'이었다.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이 법안은 현 여당인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헌정 사상 가장 인상 깊은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기까지 했다. 총선 시기에 이르러 필리버스터는 종료되었고 결국 테러방지법은 온갖 비난을 받으며 통과되었다.


그런데, 올해 제주도에 체류하게 된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위 '가짜 난민' 유입으로 인한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를 경계하는 상황이 되었다. 테러방지법을 표결에 부칠 당시에는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겨지곤 했었는데, 3년도 채 되지 않아 온국민들이 난민으로 인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을 거론할 정도로 '우리 집앞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난민 심사에 탈락했지만 대한민국에 남아 일을 하던 시리아인이 사상 최초로 테러방지법이 적용되어 구속기소되었다고 한다.


2년 전 필리버스터는 비록 실패했지만 '의회 민주주의의 희망'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온갖 찬사를 받았다. 나 역시도 당시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많은 국회의원들의 노고와 준비, 그리고 열성이 참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이전 정부의 수장은 탄핵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정작 격렬한 저항을 받았던 그 법은 정권이 바뀐 이후 단 한번의 논란도 일으키지 않은 채 탄핵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법안은 머지 않아 난민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 법안으로 탈바꿈 (혹은 둔갑)하게 될 것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짤막하게 표현하자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