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잘 만나는 친구 중 하나인 용석이는 고등학생 때 CD player를 들고 다녔다. 한창 '아이리버' mp3가 학생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던 차에 그의 CD 사랑은 다소 시대에 뒤쳐진 것 같은 인상을 받긴 했지만 음반, 곧 아티스트의 완결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그리고 (나는 비록 느끼지 못할지라도) mp3 파일이 가지지 못하는 CD 음악의 풍성한 음질에 큰 비중을 둔다면 기기와 음반들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감수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그 CD를 구입하기 위해 써야 하는 돈이 꽤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당 10,000원을 훌쩍 넘는 음반 가격은 더운 날 길거리 문방구에서 파는 슬러쉬 한 컵 사는 것과 같은 빠른 구매를 결정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게다가 듣고 싶은 노래는 한두개가 아니다! 여러 CD를 사다보면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용돈제로'의 참사가 금방 찾아올 것이었다. 게다가 용석이가 사는 CD는 '뮤직뱅크'에 나올 법한 한국 가수들의 음반이 아니었고, 이름도 생소한 외국 아티스트들의 음반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격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용석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너무나도 명쾌했다. 내가 쓰는 핸드폰으로 매달 나가는 돈을 생각해보면 한 달에 CD 1~2장은 너끈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당시 용석이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금방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일 뿐이구나.


비슷한 상황을 최근에 느꼈다. 요즘 러시아어를 한창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는데 실험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 생기거나 혹은 실험 일정을 잡기 애매한 상황이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러시아어 교본을 꺼내 들고 공부를 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기곤 하는데 졸업한 선배 중에 하나는 내게 시간이 남아도는가보다하는 핀잔 섞인 감탄을 쏘아주셨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뭐하나 둘러봤더니 야구 경기가 시작되면 야구 경기를 보느라 정신 없다. 게다가 새벽에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 어둔 밤 졸음을 깨치고 일어나 축구 경기를 본다. 중간중간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 어느 것도 지금의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여가 시간 보내기 방법이다. 용석이 말을 빌리자면 '당신들이 야구 경기 보는데 쓰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러시아어 교본 1과는 너끈히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도처에 이런 예가 많다. 내가 홈페이지를 관리한다. 나는 당구를 잘 치지 못한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곧잘 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일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