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척 바쁜 하루였다. 교회에 갔다가 성찬례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밥을 해 먹고, 홈페이지 '음악과 물리학' 글 작성을 마무리한 뒤에 학교로 가서 실험을 2시간여 진행했다. 그리고나서 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뒤 머리를 매만지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왜? 오늘 미니애폴리스의 가장 유명한 재즈 클럽인 Dakota Jazz Club & Restaurant에 가는 날이니까!


원래 12월 31일 저녁, 송구영신을 기념하는 의미로 Dakota 재즈 클럽에 가려고 했는데, 이게 왠걸, 입장료가 너무 비쌌다. 저녁 식사 시간은 $128 이고 자정까지 이어지는 밤 공연은 거의 $90인데 이건 너무 비쌌다. 실망한 나머지 다른 공연이 없을까 찾아보는데 동일한 팀의 공연이 1월 1일 저녁에 또 한번 진행될 예정이었고 입장료는 $20! 그래서 나는 신년을 맞이하는 축포 소리는 침대에서 듣기로 하고 신년의 첫 밤을 재즈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를 무척 바쁘게 보내고 나니 그 공연 시간(오후 7시)이 막 다가온 것이었다.


오늘 무대에 오른 밴드는 Davina and the Vagabond 라고 불리는 팀이었는데 피아노 겸 보컬을 맡은 Davina라는 걸출한 여성 음악가와 트럼펫, 트럼본, 베이스, 그리고 드럼 주자로 구성된 퀸텟(quintet)이었다. 대체로 블루스 재즈 연주를 많이 했는데, 스탠다드 곡보다는 자신들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주로 연주했다. 그래서 연주된 곡들이 죄다 내가 모르는 곡들이었지만 보컬의 뛰어난 솜씨 ― 여기에는 노래 실력과 피아노 실력 외에 중간중간 좌중을 휘어잡는 재담 실력도 포함 ― 와 특히 트럼본 주자의 멋진 연주 덕분에 정신이 팔려 이 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감상했다. 확실히 퀸텟이나 섹스텟(sextet)인 경우에 트럼펫과 트럼본이 같이 있으면 언제나 좋단 말이지. 가락을 연주하는 두 악기가 높은 음정과 낮은 음정을 아주 안정적이고도 독창적인 악기 소리로 맡아주니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이 있을 수가 없다.


비록 미니애폴리스는 시카고를 빼고는 재즈의 중심지들로부터 다 먼 편이지만, 아무튼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의 재즈 클럽에 방문한 것이 오늘로 두번째인데, 처음 뉴욕의 Blue Note에 방문했을 때에도 느낀 것이었지만, 역시나 재즈의 원류가 되는 언어인 영어를 모국어로서 노래하는 미국인들의 그 자유로운 보컬 능력은 한국인들이 따라갈 바가 못되는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발음이 좋다 혹은 혀가 잘 굴러간다 이런 게 아니다. 마치 한국어 무척 유창하게 잘 하는 외국인이 한국어로 된 노래를 한다 하더라도 그 느낌이 잘 안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듯... 오늘 공연한 모든 곡에는 보컬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가끔은 베이스 주자를 제외한 전원이 노래 전체 혹은 부분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들 목소리가 멋들어진 것이 흥이 절로 났다.


오랜만에 재즈 클럽에 간 거라서 그런지 마냥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게 들이킨 A Train이라는 칵테일과 미네소타 맥주인 Surly를 한 잔 비우니 벌써 기분이 들뜨고 맹~한 것이 취기가 좀 올랐던 모양이다. 하긴 요즘 술을 거의 안 마시다보니 주량이 엄청나게 줄었다. 이제는 맥주 한 캔만 마셔도 취기를 느낄 것만 같으니 원. 아무튼 훌륭한 음악과 맛난 알코올이 결합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아참. 재즈 클럽이 위치한 곳과 내가 사는 집은 6번 버스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좋은 공연이 있을 때, 특히 멋들어진 피아노 트리오 공연이 있을 때 한 번 더 방문해야 겠다. 오늘 미니애폴리스에서 아주 멋진 장소를 이렇게 익혀두어 기분이 참 좋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