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윌밍턴 여행 일정은 완전히 파탄났다. 우선 처음에 방문하려던 니무어(Nemours) 맨션은 신년전야(New Year's Eve)라는 이유로 문을 닫았다. 듀퐁 연구소(DuPont Experimental Statioun)는 생각보다 경비가 삼엄(?)하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강 하구에 위치한 포트 크리스티나(Fort Christina) 공원은 강추위로 인해 폐쇄되었고, 근처에 있는 스웨덴 개척자들이 세운 교회인 삼위일체 교회는 리노베이션 때문인지 대대적인 외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접근 불가능한 것은 매한가지. 게다가 해당 지역은 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지역 중 하나인지라 차에서 내려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계획조차 반려되었다. 그리고 북극으로부터 몰아닥친 한파 때문에 미국 중서부와 동부가 꽁꽁 얼어있는 날씨인지라 밖에서 여유롭게 관광을 한답시고 돌아다닐 상황도 못 되었다.


그럼 일찍 뉴욕으로 건너가면 안 될까? 불행히도 윌밍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가장 이른 버스인 1시 버스는 이미 매진되었다. 그 다음 버스는? 참 원망스럽게도 저녁 5시 반. 내가 예약한 버스는 저녁 6시 35분 차인데, 취소한다고 해서 돈을 돌려받는 것도 아닌지라 $20을 더 쓰면서까지 고작 1시간 더 일찍 뉴욕에 갈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장소를 옮겨다니며 충전이 가능한 음식점 및 카페에서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고 있다.


결국 오늘 한 일이라고는 아침에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가족들과 신년 인사를 한 것, 체크아웃을 한 뒤 듀퐁 호텔에 가서 에그 베네딕트를 먹은 것, 수십만개의 회사법인들이 등록되어 있다는 1209 N Orange St 에 가본 것, 그리고 삼위일체 교회에서 성탄 첫 주 감사성찬례를 드린 것, 그리고 록포드(Rockford) 공원에 가서 듀퐁 연구소를 전경으로 사진을 찍은 것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 게 많은데...?)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버린지라 예상치 못하게 Lyft 택시 운전사와 꽤 오랜 시간 차 안에 함께 있었다. 다행히도 젊은 운전사인데다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대화하기에 부담이 없었다. 듀퐁 연구소에 접근하기 힘든 것을 알고 다소 절망했던 내게 록포드 공원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조언해 주기도 했고, 포트 크리스티나까지 목적지를 바꾸어 운전을 해 주었다. 친절하게 이곳저곳을 안내해주고 불편한 기색 없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어 무척 고마웠다. 물론 Lyft 정책상 승객을 오랫동안 태우면 그만큼 비례하여 요금이 올라가기에 그 사람도 뭐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짧지만 몇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화제 중 하나는 바로 흑백 인종 문제였다.


내가 하루동안 묵은 호텔인 DoubleTree by Hilton 호텔에는 유달리 흑인 손님이 많았다. 그것도 그냥 흑인 손님이 아니라 굉장히 부유한 흑인 손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옷차림과 더불어 말투, 그리고 깔끔하게 펴진 스트레이트 펌 헤어로 미루어 볼때 거기 머무른 흑인들은 비교적 상류층에 속하는 분들이셨다. 처음엔 델라웨어 주에 흑인들이 많다더니 이를 두고 한 얘기로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도심 주변을 걸을 때에도 대부분 흑인이었고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에도 흑인들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이런 '흑인 위주의 윌밍턴'이라는 인식은 하루 아침에 깨지고 말았다. 아침에 호텔 듀퐁 1층에 있는 그린 룸(Green Room)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오 이럴수가, 손님 모두가 백인이었다. (물론 이것 하나는 반드시 이야기하자. 내가 본 두 호텔에서 아시아인 손님은 거울에 비친 내가 유일했다.) 진짜 단 한명의 흑인 손님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도심에 있는 삼위일체 성공회 교회에서 감사 성찬례를 드릴 때에도 참석 교인의 90% 이상이 흑인이었다. (물론 아시아인은 나밖에 없었다.)


이러한 완벽한 흑백 분리(?) 현상은 워싱턴 DC에서는 좀체 경험하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워싱턴 도시 크기 자체가 워낙 크고 인구도 많으며 결정적으로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은지라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기에 분명 어렵긴 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워싱턴에서 내가 보고 배운 것은 '자유와 인권, 다양성을 유지한 통합'이었는데 여기는 그러한 이상이 무색하리만큼 이곳은 흑백이 거의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Lytf 운전기사도 자신은 듀퐁호텔에서 밥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자기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냥 거디에 가는 것이 꺼려져서라고 했다. 자기가 듀퐁호텔 레스토랑에 가면 아마 유일한 흑인 손님일걸이라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다같은 미국인이고 재력이 있다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이미 보이지 않는 인종간 경계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부가 제대로 분베되지 않아 흑백간 차이가 생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미 부와는 상관 없는 미묘한 분리가 이미 존재한다는 기사의 말것은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당장 도심에 가까운 흑인 거주지역과 부도심의 백인 거주 구역을 보면 모든 면에서 차이가 극심하다. 범죄율 역시 인종 구성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2차적인 인종간의 차이와 경계를 만들어내어 악순환이 계속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미 윌밍턴은 학교의 인종 구성의 편중화로 인한 강제적인 비분리 정책(desegregation)을 실행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인종 분리 문제는 굉장히 뿌리 깊은 오래된 문제이긴 한데, 별다른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도 참 난망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끔 이런 현실을 보다보면 수십년 후의 대한민국도 굉장히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통일 이후 이북 지역의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로 고통받게 될 것이 뻔하다. 물론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의 힘이 북한의 것을 압도하기 때문에 문화어를 비롯한 평안도 및 함경도 사투리는 굉장히 빠르게 힘을 잃어 규모가 크게 축소될 것이지만 어떻게 해서도 없어지지 않을 그 잔재 비스무레한 것은 족쇄처럼 북녘 주민들에게 '너, 북한 출신'이라는 굴레를 지우게 할 것이 뻔하다.


게다가 점차 확산될 이민자 ㅡ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겪을 차별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엄연히 존재하며, 미래에도 암약할 것이다. 피부색에 대한 차별의 경우, 적어도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반대하고 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정치적인 올바름의 측면에서 지지되지만, 한국에서 더 노골적으로 심하게 표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미 OO충, 한남, 김치녀 이런 식의 저속한 편가르기 및 집단 낙인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되었는데 과연 나중에 원 북한 주민, 동남아 이민자들에 대한 저속한 표현이 널리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볼 때, 우리 나라에서도 미국이 겪었던 인종간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분리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것이라는 가식적인 희망을 품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미국과 일본은 우리 나라보다 수십년 앞선 선진국으로 우리가 현재 겪는 문제를 이미 십수년 일찍 경험하고 극복한, 혹은 극복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의 경험을 본보기 삼아서 우리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그 시작은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그래도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강한 한국인들이 경험해야 할 훗날의 소모적인 혼란은 너무나도 심대하다.


윌밍턴에서의 마지막 소회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