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어머니께서 여기 시각으로 새벽 2시에 보이스톡을 신청하셨다. 웬만해서는 시간차를 모두 고려하셔서 전화를 거셨을테니 이는 필시 긴급한 일일 거라 짐작했는데, 아무래도 할머니 소식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국 시간으로 주일 오후 시간이 되어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보이스톡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소식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으로 건너 온 이후부터 부쩍 상태가 안 좋아지신 외할머니께서 마지막 안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외할머니의 순서였다.


친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은 남아공 프리토리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에 별안간 듣게 되었다. 귀국 일정은 사나흘 앞당겨졌고 안양 집이 아닌 창원으로 곧장 내려가야했다. 친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요양원에 가시기 전 영상을 통해서였다. 예정에 없던 급서(急逝)였는지라 경황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친가 친척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계기가 되었고, 할아버지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를 추억하며 때론 웃고 때론 숙연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할아버지께서 모두에게 베풀어주신 이별여행 선물이라고 믿게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마지막은 굉장히 특별했다. 삶의 영역에서 죽음의 너머로 건너가는 그 때를 곁에서 함께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준비하던 도중 어머니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고, 나는 교수님과 학교 행정실의 조퇴 허가를 받은 뒤 곧장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으로 갔다. 할아버지의 심장 박동은 현저히 낮아져가고 있었고, 분명 내가 도착했을 때는 주변의 상황에 약간이라도 반응을 하시는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의 박동은 멈추어 더 이상 주기적인 고동을 볼 수 없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뵙자고 작별인사를 드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극적이면서도 굉장히 모호했다는 사실이 내겐 잔잔한 충격이었다: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것과 모든 기능이 정지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음은 삶에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인가? (이 경험은 Shelly Kagan의 'Death'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친할머니의 임종 소식은 서울에서 듣게 되었다. 사별 이후 친할머니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뵌 것은 창원에서 있었던 고분자학회 이후 진해에 있는 요양원에 고모와 함께 문안을 드린 것이었다. 원래 친할머니는 호리호리하고 연약하신 체격이셨는데, 침대 위에서는 거의 아이로 되돌아가신 것 같았다. 어쩜 할머니는 생전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마지막도 그렇게 조신하셨던지! 설 연휴 휴가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 소식에 급히 귀국행 비행기를 타셔야 했는데, 염습(殮襲) 이후 입관(入棺) 절차 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걸 주체하실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모두 잃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까 간접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외할머니의 임종 소식은 이곳 미니애폴리스에서 전해 듣게 된 것이다. 올해 초 설 연휴 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또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라서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적도 있다. 외할머니는 약 1년 반 정도 요양원 생활을 하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외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지셨고, 건강 악화에 따른 갖은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원주로 이사간 이후에도 1주에 사흘 정도는 안양에 머물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또 자신의 딸과 갓 태어난 외손자를 챙겨주셨고 어느새 그 생활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계시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감정은 어떨까? 어머니는 집에서부터 요양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병간호를 손수 도맡아 진행하셨는데, 책임감과 사랑, 그리고 서운함이 한 데 뒤섞인 모종의 감정이 당신의 초인적 헌신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오늘 임종 예배를 마쳤다고 하고 외할머니는 거의 코마 상태와 같은 상태로 전이하셨다니 오늘은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의 중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통화 중에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로서 자신의 부모 세대가 이제 다 갔다고 말씀하셨다 ― 10년의 기간 중에 한 세대가 이렇게 종언(終焉)을 고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사실은 이것이다: 친할아버지가 처음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 그는 처음으로 증손자[내게는 종질(從姪)]를 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적전 그 역시 처음으로 증손자(내게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를 두고 항상 '한 세대가 오면 한 세대를 가게 된다.'고 읊조리곤 하셨다. 이 얼마나 극적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며 대를 잇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것인지, 나라는 존재는 마지막 시간이 닥쳐왔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토요일 오후이다. 내일 감사성찬례 때 할머니의 이름을 기억하며 주님의 영원한 안식에 거하시기를 기도해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