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의 춘포면(春浦面)은 김제시의 백구면(白鷗面), 전주시의 덕진구(德津區), 그리고 완주군의 삼례읍(參禮邑)과 면해 있는 익산시 남부에 설치된 면이다. 봄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는데, 여기서 개는 물가를 의미한다. 이 이름이 변해 봉개가 되어 춘포면에 있는 산 이름은 봉개산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사실 이 동네의 이름은 원래 대장촌(大場村)이었다고 하는데, 일제 시대 이 지역에 거대한 농장을 지어 '적대적 공존'을 이어한 일본 지주들의 영향으로 인해 대장(大場)이 마치 일본인 소유의 거대한 농장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80년대에 마을 이름이 춘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 남아있는 간이역인 춘포역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읍에서 감사성찬례를 마친 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예전에 남원에 갔을 때 들렀던 폐역인 서도(書道)역에 비하면 더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비록 몇 차례의 보수공사와 도색을 했음에도 무려 1914년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무척 놀라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익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놀라움은 배가되었다.


마침 나온 김에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귀촌을 한 몇몇 젊은이들이 세운 듯한 '카페, 춘포'는 꽤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컨테이너로 지었다는 통유리창의 간단한 건물들은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귀여워 보였는데, 너른 마당에 별관으로 저런 건축물들을 둔다면 꽤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옆에 있는 구 대장도정공장에 가보니 조덕현 작가라는 분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한번 둘러보았다. 오래되었으나 지금은 버려진 공장의 마당엔 전날까지 내린 비 덕분인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오래된 시멘트와 나무 자재가 남아 있는 건물 내부에 설치된 몇몇 작품들, 그리고 건물 내부에 울려퍼지던 현대 음악의 조합은 인상적이었다. 최근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 전시의 일부로서 배우 안성기에게 헌정되는 현대미술 전시품도 있었는데, 처음 들어갔을 때는 관객의 위치에, 전시품을 감상하는 도중 어느새 배우의 위치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무척 영리한 전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성기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팝나무가 열지어 심겨있던 냇가 주변도 걸어보았다. 마을 골목마다 보이던 퇴락한 빈집 사이사이로 말끔하게 새단장한 근사한 새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담 위에 누워 자는 것 같았던 고양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길을 걷는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춘포면에 있는 예장측 교회인 대장교회는 정말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레이놀즈라는 이름의 선교사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이 이 근처에 표시되어 있는 것과 순교한 집사님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 교회의 역사도 꽤나 길겠구나 싶었다. 마을 한켠에 보이던 적산 가옥에는 아직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저런 집을 보수해서 사는 것도 나름의 재미이지 않을까?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른 익산시 시골 어느 곳에 빈 집을 빨리 보수해서 나만의 한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 들었다.


누군가가 브이로그로 여행기를 찍는다면 익산부터 전주까지 춘포와 삼례를 거쳐 이어지는 전라선을 따라 보이는 풍경을 담는 것도 꽤 아름다우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즉흥적인 방문이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던 춘포면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