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월은 잔인했다. 매주 이어지는 학회 및 과제 발표 일정, 그리고 논문 작업과 기타 연구비 정산 등등 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다행히 인도에서 얻어가지고 온 세균성 장염은 이제 완벽히 사라져 먹고 싸는(?) 데 아무런 문제거 없지만, 체중은 여전히 전성기에 비하면 못 미치는 68kg 이하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 수많은 5월 일정의 분수령이 되는 이벤트를 방금 막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다. 바로 제15회 대전 서구청장배 마라톤이다. 원래 지난 4월 초 경주에서 하프 마라톤을 뛰기로 했지만, 장염 때문에 포기해야했는데 계속 늦출 수는 없다며 참석을 권유 (혹은 종용)받은 대회였다. 내가 무슨 전문 육상인도 아니고 대회를 따로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21 km 남짓을 달린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기에 틈틈이 익산에 있는 육상경기 운동장이나 트레드밀에서 5 km, 10 km, 15 km를 달리곤 했고, 제발 완주만 해내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15 km 까지는 5분 40초 내외의 페이스를 잘 유지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페이스가 떨어지더니 7분 가까이 나오기도 했다. 그냥 달리지 말고 잠시 걸을까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먹고 달렸다. 호흡이 가빠져 힘들다기보다는 골반이 좀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달리는 걸 멈출만한 정도를 아니라서 계속 달렸더니 어느새 출발점이 가까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정말 비애를 느끼면서 환호하는 아이러니한 감정 상태를 느끼면서 질주하여 도착 지점을 밟았다. 결과는 2시간 6분. 평균 페이스는 6분/km 였는데, 어떻게 하면 이 페이스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달리면서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계산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물과 간식, 메달을 받고 좀 쉬다가 쥐 때문에 고생한 짐랫 박사님을 만나 같이 사진을 찍고 커피를 대접한 뒤 헤어졌다. 정말 이 분이 아니었으면 올 한 해 웨이트 트레이닝 시 무게를 늘리지도, 하프 마라톤을 달릴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인생에 나보다 나이 많은 스승, 동갑인 스승, 나보다 어린 스승을 반드시 만난다고 한다면, 이미 후자는 만난 것이나 다름 없다.


대구 마라톤에서 10 km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는 '어차피 집앞에서도 쉽게 해내는 이 일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대구까지 와서 왜 했나.'하는 자괴감 혹은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번에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뒤에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 큰 이유겠지만, 적어도 하프 마라톤은 10 km 달리기와는 달리 쉽게 아무 때에나 마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던가? 그만큼 더 값진 레이스였다고 생각하기에 더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 그리고 어떻게든 멈추고 쉬고 싶은 생각을 떨쳐내고 끝까지 달려나간 내 자신에게도 어떻게든 칭찬을 해 주고 싶었다.


이렇게 올해 목표 세 가지 중 두 가지(3대 350, 하프 마라톤 완주)를 달성했다. 이제 좋은 연구 논문 발표로 마지막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2025년은 정말이지 행복하고 멋진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