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찬례가 끝나고 교회 구성원들이 모여 연례 회의 시간을 가졌다. 교구 위원회 위원장(warden)인 Wyn이 그간의 사업 현황과 예산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오늘 정식으로 내가 교회 교구 위원회(敎區委員會, Bishop's Committee)의 위원으로 위촉되었음을 알렸다. 이제 Gethsemane Episcopal Church에서 나는 중창단 단원이자 예배 및 음악 위원회 위원이자 교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원래 성공회에서 각 본당(本堂, parish)에 소속된 교구 위원회는 vestry 라고 불리지만 Gethsemane Episcopal Church는 시내에 위치한 교회 특성상 교인 수가 매우 적은지라 자립이 힘들어 미네소타 교구의 지원을 받는 일종의 선교 교회(mission church)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에 상주하여 사목활동을 하는 사제가 없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현재 시간제로 사목 활동을 할 수 있는 사제를 구하는 중이다. 이런 경우 선교 교회의 명목상 사목 담당자는 교구의 으뜸인 주교가 되므로 교구 위원회는 vestry 대신 Bishop's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물론 내가 교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은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다. 외국인이고 30대 초반인 내가 위원으로 일해야 할 정도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은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현재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매주 성찬례 참석 인원은 20명 내외인데 딱히 그 수가 단기간 내에 늘어나거나 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 늘 같은 사람이 여러 일을 겸직하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내가 교회 활동에 의욕을 보인 덕분에 그 짐을 나눠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교구 위원회 위원으로서의 첫 행보는 바로 전날 토요일에 있었던 미네소타 성공회에서 개최한 평신도 리더십의 날(Lay Leadership Day) 워크샵에 참석하여 이런저런 강연을 듣고 각 교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실험실 밖에서 쓰이는, 과학 용어 및 표현이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는 일상 생활 영어는 여전히 내겐 '영어듣기평가'처럼 들리는지라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온전하게 알아듣기 다소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조차) 점점 축소되어가고 있는 교계의 현실 속에서도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있는 것을 두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내게 퍽 큰 위안을 주었다.


중고등학교 때와 청년부 시절에는 항상 임원이 되었든 아니든간에 교회 행사에는 무조건적으로 주도적으로 참석해야 했고, 그것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대체적으로 그것은 늘 감사하고 또 은혜로운 것들이었지만 가끔 '아니 남들은 탱자탱자 잘 놀면서 교회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딱히 현실적인 보상도 없는 교회 일에 파묻혀서 내 마음과 힘과 능력을 소모해야 하는가?'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가 있긴 했다. 우리 아버지조차도 내가 교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며 교회 일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몇 번 해 주신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자세가 조금 다르다. 교회를 섬기는 게 자발적일 수 있겠다는 것을 요즘 참 많이 느낀다. 어떻게 하면 내가 교회의 발전과 운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목을 담당하는 분들의 짐을 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를 섬기고 어떤 단체에 헌신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 대상이 내가 믿는 하느님이고 그를 따르는 단체라면 더할 나위없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다행히도 나는 소소한 음악적 재능이 있고,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 부족하지만 어쨌든 화학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니 보다 다양한 형태로 교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여럿 도맡아 할 수 있다. 왜 그렇게 훈련시키셨겠는가 ㅡ 다 뜻이 있어서 날 이렇게 훈련시키신 것이 아닐까. 미국에서도 이렇게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서는 더 기쁘게 교회를 섬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사실 몇 년전부터 간혹 직업을 가지되 예배가 있는 주일과 몇몇 평일에는 부제(副祭, deacon)로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종종 고민해 봤었다. 원래 부제의 역할이 '돕는 봉사자'로 요즘은 사제(司祭, priest)가 되기 직전에 거쳐가는 단계로만 인식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개신교의 집사(執事)를 생각하면 더 좋겠다. 아무튼 그런 길이 있으면 나의 발전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서로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몇 번 해봤는데... 그렇다고 내가 신학교를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교회에서 이런 부제를 필요로 할는지도 의문이고. 한국에 돌아가면 좀 더 상세하게 잘 알아봐야겠다.


아무튼 교회의 운영을 담당하는 위원 중 하나가 되었으니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지. 물론 본업(本業)인 연구자의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고!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