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투고된 논문에 오늘 게제 승인되어 웹에 먼저 'just accepted' 상태로 업로드되었다. 며칠 안에 저널 형식에 맞게 편집된 뒤 정식 버전으로 재업로드될 예정인데 일단 DOI 주소는 확정되었으므로 홈페이지에도 해당 내용을 적용해서 업데이트 완료했다. 어느 일이나 굴곡진 사연을 자랑하지만 이번 일 역시 실로 긴 과정이었다. 오늘 랩노트를 다시 한 번 들추어보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처음 이 일에 착수한 것이 2016년 9월 25일이었다. 무수히 밝힌 바 있지만 합성은 내 짧은 연구 역사상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2. 광가교를 2016년 11월 18일에 처음 시도했고, 2016년 11월 22일 최초의 열경화성 고분자 시편이 제조된 직후 이 일이 논문으로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의가 처음 오갔다.
  3. 2016년 12월 19일에 합성 과정을 개량하였고, 잠시동안 블록공중합체 프로젝트에 더 몰두하게 되지만...
  4.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본 프로젝트 관련 실험을 진행한 결과, 2017년 3월 10일에 개량된 합성 과정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멘붕에 빠졌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 다음 실험노트 페이지의 제목은 무려 'Back to Basics' 였다.)
  5. 다행히도 2017년 4월 중에는 개선된 실험 과정이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어 원하는 물질을 최종 합성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7월까지는 다시 블록공중합체 프로젝트에 더 전념하게 된다.
  6. 블록공중합체 프로젝트를 사실상 기약 없이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다시 본 프로젝트에 열의를 쏟기기 시작했고, 2017년 7월 초순에 기계적, 유변학적 물성 측정을 완료하여 구체적인 물성 변화를 확인했다. 이 때 논문에 삽입될 그림들을 대부분 확정하였다.
  7. 과테말라 휴가를 다녀온 뒤 X선산란분석 기기 담당자 중 하나가 되어 8월의 대부분을 X선 기계와 씨름하다시피 하며 살았다.
  8. 2017년 8월 하순에야 겨우 전기방사를 이용한 섬유 제조를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9. 조건을 계속 조절하던 중 2017년 9월 12일에 특정 조건 하에서 전기 방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최종 확인되었다.
  10. 최종적으로 2017년 10월 24일 2차원 핵자기공명분광 스펙트럼을 얻음으로써 첫번째 초안 작성을 위한 데이터를 모두 확보하였다.
  11. 2017년 12월 1일에 첫 초안이 Ellison 교수에게 전달되었다.
  12.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2018년 1월 23일에 Ellison 교수가 수정안을 내게 보내주었고 별다른 주요한 오류가 없었으므로 1월 27일에 드디어 ACS Sustainable Chemistry & Engineering 저널에 투고되었다.
  13. 2018년 3월 7일에 첫번째 리뷰가 도착했고, 4월 7일에 수정된 초안이 업로드 되었다.
  14. 2018년 5월 9일에 두번째 리뷰가 도착했고, 5월 19일에 수정된 초안이 업로드 되었다.
  15. 그리고 마침내 2018년 5월 21일에 게제 승인되었다.


미네소타에서 처음 시작한 일을 가지고 제1저자로 논문에 이름이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돌이켜보면, 이 일들이 밀도있게 진행되었다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지만, 특히 블록공중합체 프로젝트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족히 6개월은 앞당길 수 있었을텐데,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내 뜻대로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결국 이렇게 하나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게제 승인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그렇게 기분이 기쁘지는 않았는데 랩노트를 들춰보며 지난 일들을 기억해보니 ― 이 일 때문에 진짜 집안에서 꺼이꺼이 운 것도 기억나네... ― 애잔한 기분도 들고 성취감도 들고 아쉬움도 느껴지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미네소타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오명(汚名)은 쓰지 않게 되어 좋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