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에 서울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에서 열린 서울교구 성가제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덕수궁(德壽宮) 앞에 모인 수많은 무리를 보았다. 처음에는 또 민주노총이나 태극기부대의 집회겠거니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대한의사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의사들이 나와서 투쟁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분들이 무슨 이유로 거리에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성가제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바로 오진(誤診)에 근거한 의료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된 의사 3명이 법정구속된 것에 대한 항의성 집회였던 것이다.


인간이 아닌 이상 사람은 실수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의사가 환자의 모든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당시 상황으로서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것이 온전하게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료행위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요리사의 요리 등등 모든 인간의 행위에서는 이와같은 실수의 가능성이 어디에나 있다. 다만 그 실패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이 앞선 경우에서는 금전 손해, 폐기물의 양산 등으로 그치는 것에 비해 의료행위에서 실패는 생명을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리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한 문제가 되고 만다.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의 슬픔이 크고 또 그 유족들의 고통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큼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으나, 무분별하게 의료사고를 일으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료인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만일 모든 의료인들을 처벌한다면 도대체 누가 환자들을 진료하고 돌보려고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해당 의료인들이 불성실하게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자신들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환자를 더 큰 고통 속에 방치해 둔 것은 않았는지 법리적으로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전후좌우 사정과 상황이 충분히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신들의 상태를 면밀하게 표현해내기 어려운 어린이 환자의 경우 의료인들이 용태 파악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를 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보면 이런 논리를 다른 실패에도 적용해야 마땅한데 바로 과학기술연구자들의 실패이다. 과학기술연구자들은 의료인들보다 더 숱하게 실패를 경험한다. 심지어 이 바닥에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마저 존재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연구의 실패를 빌미삼아 연구비를 삭감하고 온갖 제한조건을 걸어버린다면 과학기술연구의 동기는 상실될 것이며 도전적이고도 어려운 연구는 그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에 관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신뢰해주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 실패가 의무와 책임의 방기(放棄)로부터 원인(原因)한 것이라면 무거운 징벌(懲罰)이 마땅할 것이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면 안아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마땅하리라 ― 사실 실패로 인한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이 겪어야 할 모든 고초(苦楚)를 겪은 셈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