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에는 중국이 마침내 굴기(屈起)하여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제2외국어로 일본어만 가르치던 모교 고등학교가 내가 졸업한 해에 중국어 선생을 새로 채용하고 학교에서 중국어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단편 중 하나였다. 이제 영어만 해서는 안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중국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모두가 중국의 비상을 예측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많은 이들이 중국의 경이적인 경제 성장률에 탄복했는데, 자원의 분배가 당 중심으로 이뤄지는 획일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급속한 성장세를 견인하는 효율적인 체제로 작용했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또한 이런 인식에 쐐기를 박은 것은 2007년 이후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미국의 경제 체제의 한계 혹은 모순으로 인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인식한 세간의 많은 이들이 세계의 공장을 넘어서 굳건하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이야말로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이명박 정부 기간동안 광우병 파동을 시작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어야 했다. 지금은 잘도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두고 광우병을 일으키는 공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던 쪽과, 그렇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막기 위해 소위 명박산성이라는 것을 설치한 쪽이 기억나는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인터넷에 나타나서 정부를 비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찬동하였다가, 정부는 또 그것을 허위사실 유포라고 가만두지 않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우스운 일들이 많았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은 자민당의 내각총리대신들의 연이은 삽질 끝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이끄는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등 소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중국은 10 %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2010년에 결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동시에 권력은 (외견상) 부드럽게 후진타오(胡锦涛)로부터 시진핑(习近平)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이미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중의존도는 점차 심화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초반부터 친중외교를 펼친 것도 외면적으로 크게 성장한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인식은 많이 옅어지고 말았다. 중국과의 접촉이 잦아질수록 한국인들의 내면 속에 뿌리 박힌 혐중(嫌中)의 의식은 되살아났다. 많은 기업들이 야반도주하듯 중국을 떠나오면서 재화와 지적재산권을 강탈당했고, 효율적이라는 당 중심의 자원 구조 배분의 이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치를 떨기 시작했다. 이 부정부패를 잡겠다고 칼을 뽑아든 시진핑 주석의 일성은 곧 신중국의 황제 등극을 알리는 독재 체제 시작의 신호탄이었고,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중국 정부의 행동을 (샘이 많은) 한국인들이 결코 곱게 바라볼 리 없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친중외교가 싸드(THAAD) 설치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면서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리면서 관계는 파탄이 났고, 많은 이들은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설명은 4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이다. 사실 30대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는 중국이 서울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만큼이나 단 한번도 매력적인 적이 없었다. 흔히 중국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미국 체제를 실패한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의 전형으로 묘사하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이게 2-30대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는 구호였다는 것을 이 어르신들은 몰랐다.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권하며 민족해방을 논하는 운동권 선배들이야말로 위선적이고 멍청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2000년대 중후반 이후의 대학생들만큼이나 계급 담론에 관심이 없고, 내게 빵 하나 줄 가능성도 없는 공산주의와 그 체제를 따르는 국가들을 혐오하며,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무한 경쟁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학생들은 유사 이래 없었다.


그리고 90년대를 전후해서 태어난 이들만큼 미국의 힘을 감수성 높았던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이 또 없다. 한창 뭣 모르고 클 때 이 아이들은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시쳇말로 '꼬라박는' 것을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한 뒤 바그다드에 미사일 폭격이 쏟아지는 것을 학교에서 제공되는 급식을 먹으며 보았다. 이윽고 후세인이 처단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고, ISIS의 수괴가 처단되고, 최근에는 이란의 주요인물이 대낮에 암살되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또라이처럼 구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 치 혓바닥과 140자 이내의 트위터 글로 세계를, 특히 보기에도 싫은 중국을 구워 삶는 것을 젊은 세대는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인식 속에 미국은 인터넷에서 이르듯 '천조국' 그 자체이다. 미국에 반대하는 것은 곧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큰 화를 당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이다. 그러니 지금 2-30대에게 반미(反美)를 얘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이며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장담한다. 20여년 전에는 효순이 미선이, Fucking USA, 양키고홈을 거리에서 외쳐도 울분에 찬 호응을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 20대 학생들이 그런 미친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벌어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인식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20대 학생들에게 중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최악 그 자체이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한 경제 규모를 앞세워 세계를 뒤흔들리라고 예측했던 그 어르신들의 주장은 이제 씨알도 안 먹히게 되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경직된 공산당 중심의 체제가 자초한 대재앙을 목도하면서, 인민들을 역병의 도가니에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체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뚜렷하게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수백명의 죽음으로 정부에 대한 규탄이 끊이지 않았던 대한민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수천명, 아니 수만명이 죽더라도 체제에 대해 항거하는 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예측하고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정부를 바꿨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2-30대 중에서 중국같은 국가가 세계를 주도하는 것을 용인할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결국 한-미-일의 공조에서 탈피하여 중국과 러시아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균형을 가지자는 주장은 2020년대 이후로 소멸하게 될 것이다. 미워도 일본이고, 결국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라는 사실은 20세기에도 유효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책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는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을 주장했다. 아마 21세기를 사는 후손들은 맨 뒤의 것만 취하고, 중간의 것에 대해서는 입씨름을 벌일 것이지만, 앞의 것은 확실히 버릴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