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스스로 느낀 바가 있으니 내가 일상생활에서 공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로 인한 특별한 '갬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요즘 나를 골똘하게 만드는 것은 실험과 논문 작성, 각종 업무의 진행 등이지 '죽음 이후의 세계는 무엇일까?' 혹은 '만일 세상이 한 순간에 멸망하게 된다면...'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친구의 말에 겉으로는 '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있냐?' 라고 겸연쩍게 웃으며 튕겨댔지만, 이게 사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일과 배움 외에 다른 것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느냐?'하는 질문이 된다.


올해 초에는 그게 가능했다. 바로 성무일과(聖務日課)였다. 아침기도 30여분, 저녁기도 30여분 이렇게 하면 그 동안만큼은 일이나 배움, 심지어는 주변 사람에 대한 생각마저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오직 종교적인 고요함에 심취할 수 있었다.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노래, 시편, 그리고 성서 말씀, 그리고 기도서의 기도를 부르고 읽다 보면, 그리고 종소리 애플리케이션의 소리가 울리면 그야말로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ㅡ 세계의 평화라든지, 하느님의 의지라든지, 병마의 고통이라든지, 불합리한 사회적 모순이라든지 ㅡ 을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시간만큼은 뭔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익산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이사 및 집정리를 하느라 하루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성무일과의 흐름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6월 이후로 성무일과를 제대로 지켜 바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그래서 오늘은 저녁 먹기 전에 저녁 기도를 정말 오랜만에 바치려고 한다. 벌써 곧 대림시기가 가까워 오는데 이토록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목도하고만 있었다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성찰하는 시간을 아침과 저녁마다 가져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