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연구실습으로 한 학생을 받아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첫 주에는 안전 교육과 기본적인 실험을 맛보기로 하고 있고,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어제 오늘은 실험의 개요를 아주 상세하게 처음부터 설명해 주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초등학교 때 배웠지만...'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이런 말들을 자주 꺼내게 되었다.


그런데 곱씹어봐도 과연 틀린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epichlorohydrin을 화합시킨 뒤 생성물을 얻어낼 때는 지난한 분리과정을 거치는데 첫번째는 거름 종이 여과요, 두번째는 분별 깔때기를 이용한 워크업이요, 세번째는 침전을 통한 분리이다. 침전을 빼고는 앞 둘은 이미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다. 침전도 사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상 녹는 것과 녹지 않는 것을 구별한다는 점에서 어렸을 때 배운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참고로 이것을 '소금을 길바닥 위에 쏟아 흙과 뒤섞였을 때 이걸 어떻게 분리할까요?' 라는 문제로 바꿔서 물어봤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모두 어떤 것인가? 바로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 알고리즘(algorithm)에 기반한 실험 계획 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결국 화학 반응은 대학교 학부 수준의 유기화학을 배워야 이해하는 것이지만, 실험을 수행하는 방법과 기술의 디자인은 모두 이미 대학 이전에 배웠던 것들의 조합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학부 때 학점이 좋다고 대학원에서 우수한 인재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교과서에 박혀 있는 내용을 실험실 연구에서 재현할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그 창의력을 뒷받침해주는 탄탄한 기초라는 게 있을까? 그게 바로 초, 중, 고등학교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얼마나 잘 숙지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에 단련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끊임없이 이에 대해서 얘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