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가가 예산을 통해 국제 대회에 나가 경쟁할 선수들을 선발하여 종목과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을 (선수촌에 가둬놓고) 집중적으로 육성시키는,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 대회에서 거둔 좋은 성적이 한반도 내에서 체제의 우위를 선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과거에는 일반 국민들이 이러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너그럽게 받아들였고,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수확한 많은 메달은 역으로 국민들에게 모종의 애국심 내지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이런 순환이 긍정적으로 인식되었을 때에는 어느 누구도 엘리트 체육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21세기에 들어와서 대한민국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거대한 비판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엘리트주의 자체를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흐름인데, 이는 2000년대 초반의 '서울대 폐지론'이나 2020년대의 '특목고 폐지론'은 모두 매한가지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시키는 시스템을 완전히 혁파하려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엘리트 교육의 수혜자들에게 비대칭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현 교육 시스템이 근본적인 불평등과 불공정을 야기한다고 본 이들은 ㅡ 정작 그들 자신들 역시 그러한 혜택의 수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ㅡ 사회 전반에 이러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문화를 뿌리뽑고자 했고, 엘리트 체육은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마침 여러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빙상 연맹의 파벌 싸움이 대표적인데, 대학으로 연결된 인맥으로 인한 알력과 폐쇄적인 집단 내에서의 폭력 행위에 관한 뉴스는 세금 들여 선수들을 양성하라고 했더니 이런 허튼 짓이나 벌이고 있었냐는 세간의 불편한 인식을 증폭시켰고, 결과적으로 유력한 선수들이 타국으로 귀화하거나(빅토르 안) 사생활 구설수에 휘말리는 등(김동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국위 선양이니 뭐니 이런 가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결국 남 좋은 일만 해 주었구나 하는 허탈감만 들게 해 주었다. 연이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일탈(왕기춘 등)에 더해 쇼트트랙 팀 내에서의 성폭력, 그리고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작년의 트라이애슬론 팀 가혹 행위까지,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비난받아야 할 마땅한 근거로 쓰였다.


새로운 세대의 교육 역시 이러한 엘리트 체육이 추구하는 바와는 정반대다. 불굴의 투지, 집념, 끈기... 이런 가치는 요즘 세대의 교육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메달을 따야 하는데, 그 메달 색은 금색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서는 '대학을 가야 하는데, 그 학교는 명문대여야 한다'는 이런 강박에 대한 비판에서 나는 향기가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요컨대 2020년대의 사회 분위기는 선수 개개인이 만족감을 누리며 행복하게 스포츠 게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금메달 성과주의에 휩싸여 인권과 선수 개인의 성취감을 말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이 사회적 분위기를 머리로는 사람들이 공감하는데 마음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선수촌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며 운동에만 매진했다는 이들의 결과가 형편 없다면 도대체 2021년을 사는 납세자들 중 누가 웃으면서 '졌지만 잘 싸웠어.'라고 반겨줄 수 있는지? (비슷한 예로 과학기술자에게도 세금을 통해 형성된 연구개발비를 지급하는데 온갖 혜택을 누리며 연구에만 매진했다는 이들의 연구 성과가 신통치 않다면 도대체 2021년을 사는 납세자들 중 누가 웃으면서 '실패도 소중하지.'라고 격려해 줄 수 있는지?) 어쩌면 2041년에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ㅡ 하지만 적어도 2021년의 대한민국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30개의 세계 3위를 목표로 한 일본이 대한민국을 압도하는 결과를 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이하게도 일본이 앞서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지 못한다 ㅡ 일본이 하면 한국도 해야 하고,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라도 지면 안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전국에 널려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순위권 상위에 나란히 있는 중국과 일본 국기를 보고도 2021년을 사는 사람들 중 '일본보다 못했지만 잘 싸웠어.'라고 반겨줄 수 있는지? 심지어 일본조차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중국과 한국보다 한참 낮은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한 충격으로 체육 시스템을 아마추어리즘 일변도에서 투자 및 육성 쪽으로 변화를 주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려고 하는 움직임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 돌이켜봐야 하는 것은, 이제는 손을 쓰려고 해도 잘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단 다음 세대의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인력 pool 자체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한 반에 6-70명씩 있던 시대에는 전교생 중에 특출한 운동 실력을 보이는 사람이 한둘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한 반에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스포츠 영재가 존재할 확률이 일정하다고 가정한다면, 과거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미래 유망주의 숫자는 훨씬 적고, 그렇다면 국제 경쟁력의 약화는 기정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 통념과 시대의 흐름상 대한민국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결국 해체 및 재구성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과거 체육인들이 강조했던 가치들은 모두 군사 정권 시절의 이야기 비슷한 것들로 치부되어 철제 캐비닛 안에 쳐박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는 이런 엘리트주의의 혁파의 결과로 빚어지게 될 하향평준화를 마땅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역대 최소 금메달 획득이 예상되는 이번 도쿄 올림픽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깐. 과연 올림픽을 통해 순수한 인간의 신체 능력을 겨루는 문화는 언제 수명이 다하게 될까? 엑소스켈레톤(exo skeleton)을 통해 훨씬 더 무거운 것을 손쉽게 들 수 있고, 다양한 모빌리티를 통해 달리기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공기의 흐름과 방향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정확하게 과녁의 정중앙으로 활이나 총탄을 보낼 수 있는 시대에, '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라는 표어는 얼마나 그 생명력을 유지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의 다음다음 세대에는 올림픽 경기 종목이 마치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놀라운 기예처럼 취급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달인은 어떠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비록 느려터진 속도지만 42.195 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폐활량을 소유한 달리기 마니아입니다." /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오늘의 달인. 갑자기 주머니에서 50여년 전 구식 산탄총을 꺼내더니 맞은편에 날아가던 접시를 정확하게 명중시킨다! 아니, 이런 기술을 계산 시스템 없이 해내다니 정말 신기하기 그지 없다!" / "달인은 묵묵히 손을 뻗으며 인공 암벽에 설치된 요철을 손으로 잡으며 위로 올라간다. 달인은 언제부터 이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취미를 갖게 된 걸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