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자이언트』라는 영화가 재즈 음악 영화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기에 호기심이 있긴 했지만,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전체 줄거리의 진행을 돕는 곁다리 정도로만 쓰일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 비록 일본의 음악 시장은 대한민국의 그것보다 무척 크고, 일본 내 재즈 음악의 역사나 저변은 뭐 비교가 민망할 정도로 깊고 넓은 것이 사실이지만, 재즈 음악이 분위기 좋은 카페나 술집의 무드를 돋우는 배경 음악 정도로만 쓰이고, 재즈 클럽이 진지한 음악 감상의 장(場)이 아닌 커플들이 한 번쯤 지나치는 데이트 코스 중 일부 정도로 여겨지는 21세기의 현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재즈에 대한 열정적인 10대들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좀 우악스럽게 보일, 파이팅 넘치는 '열혈' 기질이 스크린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심했는지, 비현실적인 대사를 힘 있게 내뱉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다가 '저건 7-80년대 일본 야구만화 스타일이다.'라고 뇌까릴 정도였다. 줄거리도 아주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여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고, 심지어 몇몇 대사는 나오기 전에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세세한 감정선의 표현이나 반전, 복선 등에 힘을 쏟지 않는 대신, 주인공들의 재즈 연주를 향한 열정과 혼신을 다하는 연주 모습을 묘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겠다.


과도해 보이기까지 하는 라이브 연주 장면의 묘사를 보며, 이 영화는 아마 만화 원작을 즐겨 보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애니메이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는 평면 상 멈춰 있는 그림일 뿐인데다가 청각적 자극을 전혀 전달해 줄 수 없지만, 영화는 역동적인 활동 모습을 통해, 심지어 3D 렌더링을 통해서 보다 실감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데다가 OST를 통해 주인공이 연주하는 음악을 실감나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시각 정보를 기반으로 상상만 해야 했던 독자(讀者)들이 영화 매체에서 그려낸 표현과 자신의 상상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 혹은 얼마나 일치했는지를 비교하며 꽤나 큰 희열을 경험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테너 색소포니스트라 그런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나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라든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가 생각나는 1950-60년대 전후의 비밥(BeBop) 계열의 색소포니스트 리더를 둔 쿼텟이나 퀸텟의 음악이 자주 떠올랐는데, 영화 중간에 콜트레인의 『Impressions』가 나오는 것을 보고 기분이 마냥 좋았다. 실제로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재즈 CD들 중 이 시기의 사람들이 많다. 물론 소위 모던 재즈(Modern Jazz)라 불리는 것만 편식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의 음악이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무척 익숙하고 또 편안했다.


영화에서 도쿄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묘사하는 '쏘 블루(So Blue)'는 아마도 도쿄에 있는 '블루노트(Blue Note) 도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마침 영화에서 그려닌 입구나 내부의 모습도 실제 블루노트 도쿄의 그것들과 무척 흡사했기에 내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 있는 블루노트에 간 적은 있었으나 아직 도쿄에 있는 블루노트에 간 적은 없었다. 뉴욕 블루노트에 갔을 때 재즈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런 대중적인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도쿄에 있는 블루노트에서 더 재즈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일 가게 된다면 이 영화의 최후반부 공연 장면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부디 그 때 무대 위에 테너 색소폰 연주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참, 이 영화를 보고 소니 스팃(Sonny Stitt)이라는 색소포니스트에 대한 관심이 새로 생겼다. 찾아보니 비밥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음색과 연주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았던 명연주가였다고 한다. 다음에 도쿄에 갈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의 앨범을 하나 구해 와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