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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을 구매하고 정리하고 실험을 위한 아이디어 확인 및 실험 과정 구상 등을 하고 나면 어느새 벌써 점심이 된다. 점심시간은 거의 12시 ~ 1시.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일과는 오전 일과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이번주 목요일에는 화학과에 있는 NMR 교육이 있었다. 금요일에는 Sigma-Aldrich로부터 주문한 시약들이 쏟아지듯 배송되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acryloyl chloride와 DABCO가 없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그렇게 오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은 대략 5시 반 이후이다. 물론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퇴근 시간은 이것보다 조금 늦어지게 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6시 이후까지 남아 있어본 적이 드물다. 아참. 이틀에 한번씩 오후 6시까지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1시간 가량 운동을 하고 돌아온다. (참고로 요즘 체중은 거의 67 kg 에 닿을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요리 및 식사로 부산스러운데, 밥을 짓고 밥을 먹고 밥그릇을 씻는 그 모든 일과를 마치는 시각은 운동을 안 한 날은 8시, 운동을 한 날은 9시 정도가 된다.
그러면 그제서야 컴퓨터를 통해 뉴스를 검색하고, 재미있는 소식은 없나 찾는다. 간혹 보드게임을 한 판 하는 경우도 있고, 실험 동영상이나 관련 자료들을 찾는다. Feedly를 통해 새로 출판된 따끈따끈한 논문들도 가끔 보고 BBC 뉴스 podcast도 듣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잘 시간이다.
사실 이보다 일찍 잠에 들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하면서 낮에 커피도 마시고 그러다보면 자정까지 쉬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주중에 '잠의 부채(負債)'에 시달린다. 그것을 되갚는 날이 바로 오늘같은 토요일인데, 토요일에는 알람도 꺼놓은 채 오전 9 ~ 10시까지 잔다. 심지어 낮잠을 자는 경우도 있고, 토요일엔 좀 더 일찍 잠을 청하기도 한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시내에 있는 Gethsemane 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려야 하니까 9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감사성찬례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거의 빠짐없이 Snelling Avenue와 Hamline Avenue 사이에 있는 월마트(Walmart)와 컵 푸드(Cub Foods)에 가서 필요한 물건 및 먹거리를 산다. 그렇게 장을 보고 돌아오면 대략 3 ~ 4시. 이것저것 하다보면 또 저녁을 요리할 시간.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다 마친 뒤에는 거의 8시. 그러면 새롭게 다가올 월요일을 기대 혹은 걱정하며 주말의 마지막 밤을 여유롭게 즐긴 뒤 잠을 잔다.
안양에서 살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단조로우면서도 규칙적이다.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으나 타지(他地)에서 생활한다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즉, 일상에 청량감을 주는 뭔가 색다른 일이 일어날, 혹은 스스로 야기할 확률이 무척 낮아진다는 것. 당장 여기서 늦은 밤에 재즈 클럽에 가서 맥주를 한 잔 기울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는 친구들과 펍에 가서 수다를 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쓸쓸하다거나 처량하다거나 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솔직히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을 내심 나는 늘 꿈꿔왔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자국민(自國民)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상실했다는 것이 약간 허탈할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