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아무것도 한 게 없었던 나는 이번 주일에 기필코 한복을 입고 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겠노라고 다짐했다. 그것이 송편은 커녕 한국에서는 발에 채일 듯이 흔하디 흔한 추석 음식 하나 없이 아침 그룹 미팅으로 점철된 추석 기간을 보낸 내게 그나마 나의 한국인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기상한 나는 밥을 먹고 씻자마자 옷걸이에 고이 걸어두었던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쾌자를 입었다. 아뿔싸, 세조대(허리끈)까지 찬 것은 좋은데 쾌자 옷고름을 도무지 못 만들겠다. 고름을 잘 말아야 외투에 맵시가 사는데, 이를 어이할꼬. 결국 전통적인 옷고름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도무지 알수 없기에 그냥 리본묶음을 살짝 변형해서 차려 입고 나갔다.


지나가는데 사람들의 갸우뚱한 시선이 간간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서울에서 한복을 입을 때보다 덜 눈치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서울에서 한복을 입은 적은 없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쪄죽기를 바라지 않을 바에야 7월에 맞춘 이 한복을 기록적인 2016년 폭서(暴暑)의 여름을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입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내 한복은 태평양을 건너고 나서야 미니애폴리스라는 한복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도시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 아무튼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류장으로 걸어가 전철을 타고 간 뒤 시내를 활보하며 교회 문앞에 들어섰다.


감사성찬례를 드린 미국인 성도들도 상당한 관심을 내비쳤다. 어떤 사람은 옷감이 신기하다며 만져보고 싶다고 했고 아름답다, 색깔이 예쁘다 칭찬을 마구 해주셨다. 오늘 한복을 입고 와줘서 참 고맙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미네소타 나이스(Minnesota Nice)라는 일종의 겉과 속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이 사람들은 한복을 자기 눈앞에서 본 적이 자기 생애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을 테니 신기하긴 참 신기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참으로 서양적인 그리스도교 성당에 아주 동양적인 사람이 동양적인 옷을 입고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들 눈에 참 묘했을는지도.


생각보다 한복은 입고 벗기 편했으며 걸어다니며 도로를 활보하는 것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늘 꽉 조이는 것같은 슬림한 라인을 따른 바지와 티셔츠를 입는 게 익숙했는데 이렇게 품이 큰 옷을 입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고 그래서인지 펑퍼짐한게 퍽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만 바람이 불면 옷고름과 쾌자가 휘날리는 것이 멋은 과히 있었으나 인구 밀도 높은 현대 도시에서는 주변 사람에게는 약간 민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팍에 맨 세조대가 허리춤까지 내려간 것이 오늘 한복 패션의 옥에 티였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첫 출발은 잘 끊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저고리/바지/쾌자로 구성된 한복을 입고보니 다음에는 백의민족(白衣民族)답게 흰 도포를 입어보고 싶고, 머리에는 탕건 망건을 하고 그 위에 갓을 쓰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도포 위에는 답호를 입고, 또 두루마기도 있으면 멋이 날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 한복이 엄청 멋있고 아름다운데 우리 나라 남성들은 왜 예복이나 정복으로서 한복을 더이상 입지 않는 것일까?


그나저나 언제 또 한복을 미국에서 입을 수 있을까. 어디 여행갈 때 한 번 입어볼 수 있을 것이고, 설날에도 한 번 입을 수 있겠지. 핼러윈 때 한복을 입을 일은 없겠지만 ― 아마 그때는 정말 죽어라고 실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 아무튼 한복을 장만해서 갖고 온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대만족이다, 대만족!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