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8시에 그룹 미팅을 하면서 박사과정동안 전혀 하지 않았던 폴리우레탄, 심지어 그 폴리우레탄의 합성 계획을 발표했다. 영어가 짧은 탓에 서두 부분 설명의 논리성이 말하는 내가 스스로 되뇌이며 생각하기에도 많이 부족했지만, 본격적으로 실험 계획 파트에 들어가자 Ellison 교수님도 긍정적으로 그 계획을 평가해주시는 것 같았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실험을 당장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것도 여러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오늘 드디어 캐비닛 속에 두었던 랩 노트를 꺼내서 1쪽부터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논문을 참조해서 어떻게 하면 기능화된 폴리우레탄을 만들어낼 것인가 몇 가지 실험 방법을 기술해봤는데... 생각보다 새로 사야 하는 시약도 많았고, 새로 갖춰야 할 도구도 여럿 있었다. 특히 가장 나를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관 크로마토그래피(column chromatography). 부끄러운 말일수도 있지만, 나는 화학부에서 학사, 박사를 받았음에도 유기화학 실험의 기본이라고도 다들 입을 모아 말하는 소위 '컬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이론적인 배경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실제적인 경험이 전무(全無)할 뿐이다.


그래서 일단 필요한 시약들을 모두 구매 신청한 뒤에 늦은 오후 시간에는 관 크로마토그래피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추후에 관련된 작업을 능숙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아마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을 것인데 고분자 합성을 많이 하는 옆방의 박사과정 혹은 포닥에게 좀 물어보면서 실시해야겠다. 그나마 내 실험 계획에 따르면 어려운 '분리'가 아니라 비교적 덜 스트레스 받는 '정제'일테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다.


미네소타 대학으로 포닥을 오기로 결정된 이후 서울에서 줄곧 '거기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늘 생각해봤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박사과정 때 신나게 했던 블록공중합체와 그래핀에서 탈피하자.'라는 것이었다. 그 바람이 너무 제대로 적중한 게 아닐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역만리(異域萬里) 떨어진 이곳에서 고분자 합성 및 섬유 제조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내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너무나도 새로운 분야이다. 하지만 Ellison 교수가 제안한 연구 제안서를 꼼꼼히 살펴보며 연구의 배경을 살펴보고나서 이 연구가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라는, 그래서 연구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지난 11년 반동안 합성화학(合成化學)과는 거리가 멀었던 ― 산화 그래핀은 합성한 적이 있다. ― 내가 과감하게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Ellison 교수님은 내게 미국 생활에 settle 한 뒤에 남은 것은 hard working 이라고 그랬다. 그 말이 맞다. 이제 남은 건 열심히 실험하는 것이다. 아무튼 화학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진짜 화학을 다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