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년 5개월만에 핸드폰을 바꿨다. 그간 큰 무리 없이 써왔던 내 옵티머스 G가 버벅거리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올해 설날 떡국을 먹고 나서부터였던 듯하다. 혹자는 '역시 요즘 핸드폰은 2년을 수명으로 정해놓고 만드는 거야'라고 했지만 나는 이 갑작스런 핸드폰의 노화(老化)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다. 최근 내가 클래시 오브 클랜이나 유튜브 감상을 즐기느라 핸드폰을 너무 고생시켰던 게 화근이었던 건가. 아니면 정말 이 모든 핸드폰들은 2년 시한부 인생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인가. 그래도 24개월 약정을 무사히 마치고 5개월을 더 쓰지 않았는가. 이만하면 잘 쓴 거다.


아무튼 무슨 핸드폰을 구입할지 무척 고민했다. 같은 LG 계열의 증손자뻘인 'G4'를 구입할지, 아니면 갤럭시탭 10.1을 샀던 것을 기억하며 삼성家로 갈아타 삼성의 터치위즈 UI에 몸을 맡길 것인가. 사실 갤럭시 S6보다는 엣지에 더 눈이 갔으나 이 모델을 구입하는 건 너무 큰 모험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안전하게(?) 갤럭시 S6 를 구입하기로 했다. 색상은 펩시 콜라캔의 겉면을 떠오르게 하는 푸른 빛이 도는 알루미늄 유리 광택을 가진 블루 토파즈(Blue Topaz)로 선택. 여담이지만 색깔 이름이 무척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토파즈는 원래 무색이지만 간혹 누런 빛을 띠는 보석이었다. 대체 푸른 빛을 띠는 희귀한 토파즈가 있긴 있나? 그런데 알고보니 갈색 토파즈를 방사능 처리하면 푸른빛을 띠는 토파즈가 나온다더라. (그렇다고 이 핸드폰을 방사능 처리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무식한 걱정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잠시 역사를 되짚어보자면, 지금까지 나는 7개의 핸드폰을 사용해왔다.


1. SKY IM-6100  (2003~2005)

2. 삼성 SCH-V540 (일명 효리폰) (2006~2008)

3. LG LH-2300 (아르고) (2008~2010)

4. HTC Nexus One (2010~2012)

5. 삼성 Galaxy Nexus (2012)

6. LG Optimus G (2012~2015)

7. 삼성 Galaxy S6 (2015~현재)


SKY IM-6100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슬라이드폰이었는데 여닫을 때 방울 굴러가는 소리같은 게 나는 게 핵심이었다 ㅡ 물론 자주 하면 시끄러워서 보통은 그 소리를 꺼두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그런 물건은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게는 불필요한 요물일 뿐이야!'라고 여기곤 했는데 막상 EBS 장학퀴즈에서 상품으로 이 핸드폰을 내게 덥썩 쥐어주었다. 장학퀴즈의 후원사가 SK고 당시 SKY는 SK 그룹 산하의 단말기 제조업체였다. 'It's different' 라는 구호로 명품 프리미엄급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던 핸드폰이었는지라 나는 횡재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1:1로 대전하는 격투 게임을 꽤나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결투에서 지면 실험 대상으로 약물에 퐁당 담가지는 모습이 경악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포털 사이트가 된 통신 서비스 Nate를 통해 mp3 하나를 다운로드 받았는데 그 때 꽤 돈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가장 오래 쓴 것은 학부 시절 대부분을 함께 했던 삼성 SCH-V540 인데 어디에나 떨어뜨려도 끄떡없는 최고의 내구성을 자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전화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수리를 맡겼더니 파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계 아래에 나 있는 구멍으로 먼지가 유입되는 바람에 생긴 문제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3년여를 신나게 쓰고 나서야 이 핸드폰은 영면을 취하게 되었다.


LG 아르고폰은 당시 시중에 풀리던 감압식 터치폰 중 하나였다. LGT로 번호이동을 하게 되면서 매장에서 샀는데 당시 50만원이 넘는 원가를 할부로 구입하는, 당시로서는 지름신 들려도 제대로 들었을 때에야 할 수 있었던 결정을 내렸다. 터치폰은 처음엔 유용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차 터치펜보다는 손가락과 손톱을 이용하게 되었다. 핸드폰의 디자인도 무척 좋았고 화면도 넓었으며 특히 글자 크기와 폰트가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LGT의 데이터 통신 방식은 2.5G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그 덕에 터치폰을 이용해서 풀 브라우징 인터넷 서핑도 할 수 있었다. 가끔 웹툰이나 간단한 뉴스, 혹은 메일 확인은 터치폰의 내장 브라우저를 통해 진행했는데 속도는 물론 느렸지만 그래도 핸드폰으로 기껏 제한된 Nate 서비스나 활용할 수 있었던 이전에 비하면 획기적이고 환상적이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DMB는 신세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넥서스원은 한창 스마트폰이 대한민국에 물밀듯이 들이닥쳤을 때 사게 된 첫 스마트폰이었는데 2년동안 고장한 번 없이 정말 잘 썼다. 출시되자마자 매장에서 사는 호갱짓을 벌인 덕분에 출고원가 그대로 꼬박꼬박 24개월 나눠서 냈는데 그 값을 톡톡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운데 있던 트랙볼(track ball)이 일품이었는데 한동안 이 트랙볼 없이 다음 레퍼런스폰이었던 갤럭시 넥서스를 쓰느라 꽤나 골치 아팠다. 그렇게 명민하게 빠르다거나 가벼운 핸드폰은 아니었는지라 다들 '넥레기'라며 비하하기 일쑤였지만 나는 나의 핸드폰을 정말 어여삐 여겼다. 이 핸드폰 역시 집구석 어딘가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다.


갤럭시 넥서스는 넥서스원 다음으로 산 레퍼런스폰이었다. 나는 레퍼런스폰이 최고라고 여겨서 다음 핸드폰은 무조건 레퍼런스폰으로 사겠노라고 다짐했고 뽐뿌라는 사이트를 통해 무척 싸게 이 핸드폰을 구입했다. 사실 핸드폰 성능이 무척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직 레퍼런스폰이라는 점에 이끌려 산 것이었다. 레퍼런스폰 답게 구매 당시부터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4.0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 막 서비스를 시작했던 구글 영화를 통해 가타카(Gattaca)를 다운로드받아서 시청했는데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약간 휜 고릴라 글래스 재질의 디스플레이도 기억이 남는다. 다만 이 갤럭시 넥서스를 뉴욕의 호스텔에서 도난당하게 되면서 일이 갑자기 꼬이게 되었다. 1년은 더 사용할 만한 핸드폰이었는데 참 아쉬운 일이었다.


옵티머스 G는 그래서 미국 뉴욕에서 귀국한뒤 급히 매장에서 구매한 핸드폰이다. 당시에 LTE 기술이 스멀스멀 들어오던 시기였던지라 나는 이참에 가장 최신폰이었던 옵티머스 G를 구매했다. 이게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 옵티머스 G는 당시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갤럭시 S3 나 베가 시리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고 내구성도 좋았다. 게다가 옵티머스 G의 디스플레이는 선명하면서도 그리 눈부시지 않았다. 비록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디스플레이가 크게 금가는 바람에 한번 수리를 맡기고 배터리 문제로 수리를 추가로 한번 더 받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나무랄 데 없이 자기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이 핸드폰은 조만간 초기화되어 또 집구석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게 될 계획이다.


이번에 산 갤럭시 S6는 사실 특장점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고 그저 디자인과 '이름값'으로 산 것이다. 2015년 현재 대부분의 핸드폰들은 비슷한 수준의 높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고, 무선 통신 속도 역시 광대역 LTE 라는 이름 하에 가끔은 유선 통신보다도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핸드폰의 램이 얼마인지 CPU는 어떤지 이런 것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핸드폰의 성능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면에서 갤럭시 S6 제품군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과연 2~3년 뒤에는 어떤 핸드폰을 사게 될까? 아니, 핸드폰을 사긴 할까? 그 시절이 되면 핸드폰은 이제 어른들이 쓰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젊은 세대들은 웨어러블(wearable) 기계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유구한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필요한 도구는 모두 손으로 쥐고 사용했던 인간이 21세기의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갑자기 다들 손 대신 다른 곳에 도구를 붙이고 쓰리라고 쉽게 단정할 순 없으나 그것이 명백한 발전 방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듯하다. 언젠가는 그 기계와 인체가 한 몸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하겠지만 분명 20년전에는 지금같이 지하철 승객들이 모두들 요상한 기계를 손에 들고 구부정하게 목을 굽혀 밝게 빛나는 화면을 쳐다보며 톡톡 두드리는 것을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21세기의 모습을 그린 20세기의 안내 책자를 가끔 보면 인간 사회의 통념은 천천히 그러나 무척 확고하게 변하여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가 하면 표준이라고 여겼던 것이 구습이 되는 일도 허다했음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어쨌든, 새로운 기간을 함께 하게 될 갤럭시 S6를 환영하며!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