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트한자 독일항공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들어온 시각이 6시쯤 되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7시 50분쯤 되었나. 오랜만에 한글 활자로 쓰여진 한국어 신문을 읽고, 빵과 우유로 허기진 배를 달랜 뒤 잠깐 눈을 붙인다고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보니... 세상에 벌써 3시 반이다. 시차적응이 실패할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 일주일은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비록 참석한 학회인 독-한 고분자 심포지엄(Germany-Korea Polymer Symposium)의 주제가 "생명과학과 기술 사이의 고분자 연구(Polymer Research at the Interface to Life Science and Technology)"라서 우리의 관심주제와 많이 동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ㅡ 그래서 대부분 많이 힘들어했다. ㅡ 몇몇 영감을 주는 강연은 여전히 있었다. 아 참, 교수님께서 이번 발표에 내 연구 주제 상당부분을 다 포함시켜서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학회 마지막 날 저녁 세션 때 Rewe city에 나가 HARIBO 곰돌이 젤리와 기타 먹을 것들을 산 것을 빼고는 아주 성실하게 학회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나무랄 데 없이 만족스러웠고, 숙소도 Wi-Fi가 비싼 유료라는 점만 빼면 훌륭했다. 함부르크 시내의 볼거리, 즐길거리도 매우 좋았고 마지막 이틀간의 베를린 여정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보는 독일측 친구들이 무척 반가웠고 새로 알게 된 독일 측 학생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일주일을 쉽게 풀어쓰기는 힘들테니 아래에 몇 개의 주제로 간단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싶다:

 

1. 포스터 발표 수상!

 

학회 기간 중 수요일 밤에 포스터 발표 시간이 있었다. 함부르크 대학교 화학과 건물 1층 로비에서 열린 이 포스터 발표는 맥주와 부페식을 겸한 매우 독특한 시간이었는데 ㅡ 사실 그래서 그랬는지 발표자가 언제 밥을 먹어야 하는지, 사람들은 언제 포스터를 둘러보며 발표자와 논의를 해야 하는 지 조금 헛갈리긴 했다. ㅡ 매우 북적거리고 흥겨운 시간이었다. 다음날 학회를 마무리하는 선상 만찬에서 포스터 발표 수상자가 공개되었는데 그 중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조금 특별하게 추가된 상이었는데 독일 출판사인 Wiley-VCH 에서 지원한 상이었다. 아무튼 이 상으로 인해 1년간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Macro 저널들 중 하나를 1년간 무료로 구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Macrmolecular Rapid Communications를 신청하지 않을까 싶다.

 

2. 협력 가능성?

 

교수님의 연구 발표 및 내 포스터 발표 중 독일의 막스 플랑크 고분자 연구소(Max Plancks Institut fur Polymerfurschung, MPIP)의 Berger 그룹의 한 프로젝트 리더가 협동 연구를 제안했다. 그분은 AFM 관련 전문 연구자였는데, 내 샘플들을 자신들이 새롭게 고안한 AFM 으로 분석하고 응용하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도 생각해보니 그런 정도의 수준이면 언제든지 협력이 가능하고 또 의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검토하자고 이야기했다.

 

3. 페이스북 재가입 결정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 하나같이 '성수 왜 페북 지웠어?' 였다. 전화번호나 카카오톡으로 쉽게 연락할 수 있는 한국 친구들과는 달리 외국 학생들은 페이스북으로만 연락이 가능했는데 내가 그걸 미처 고려하지 않고 일시에 공고도 없이 삭제했던 것이다. 조만간 연락용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만들 생각이다.

 

4. 맥주, 와인, 독일 음식

 

독일에서 꾸준하게 독일식 음식과 맥주와 와인, 기타 주류를 즐겼다. 종류도 다양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최대이자 유럽에서 2번째로 가장 활발한 항구 도시이므로 이곳의 생선 요리를 으뜸으로 치기에 그래서 되도록이면 생선을 주문했는데 맛있었다. 의외로 햄버거를 단 한번도 먹지 않았는데, 독일인들조차 함부르크에서는 햄버거를 찾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보니 햄버거는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껴 넣은 미국 음식이며 단지 이름을 Hamburg에서 차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5. 레페반(Reeperbahn)

 

레페반은 독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유흥가, 환락가이자 잘 알려진 '노는 거리'이다. 온갖 기기묘묘한 물건(?)을 파는 상점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고, 길거리에서는 '오늘 놀고 가지 않을래?'라고 물으며 남자들에게 접근하는 직업여성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또한 이 거리에는 18세 이상의 남성만 출입 가능한 홍등가가 있다 ㅡ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헉!' 소리 나는 거리는 아니어서 조금 실망했다(?). 학회가 끝난 마지막날 밤, 많은 학생들이 레페반으로 몰려가 클럽에서 새벽까지 춤추며 놀았는데 나는 외국 클럽은 커녕 한국에서도 클럽을 잘 가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호기심도 들고 그랬다. 그런데,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 새벽 3시까지 아주 신나게 춤추고 놀다가 숙소에 돌아 왔다. 클럽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으하하하. (클럽에서 '강남 스타일' 노래가 나온 게 화근이었다......)

 

6. 독일어

 

독일측 학생 중에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 리투아니아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다. 간단한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말하는 기회가 되었고 확실히 그들의 모국어를 구사하면 훨씬 빠르게 가까워진다. 애석하게도 정작 내가 독일 학생을 몇 년째 한국에서 만나보는데 독일어 실력은 그만큼이 아니라는 사실. 이번에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게 독일어를 좀 진지하게 공부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내년 2월에는 지금보다는 훨씬 유창하게 독일어로 이야기하겠노라고 선언했다.

 

7. 베를린

 

도대체 누가 베를린이 볼거리가 없고 대도시라서 재미가 없다고 했나? 분단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베를린을 뜻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루터교 교회인 베를린 최대의 성당인 베를린 돔은 개신교 교인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유럽의 로마 가톨릭 성당과 다른 점을 엄청나게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늘한 밤에 강가에서 오렌지 쥬스를 들이키며 맞은편 베를린 동편의 야경을 즐기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독일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렇게 좋은 경험과 친구들을 선물해 준 IRTG 프로그램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