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12일 1박2일동안 대전의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고분자학회. 벌써 고분자학회를 위해 대전에 내려간 게 다섯번째. 지난 5년간 매년 한 번씩 최소한 고분자학회를 위해 대전에 간 것이다. 이제 웬만한 위치는 대충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니 아마 대전 중심가 어딘가에 날 떨어뜨려놓아도 별로 걱정하지 않을 태세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구두 발표(oral presentation)을 했다. 그동안 어느 학회에서나 포스터 발표만 했었는데 말이다. 이번 학회 발표를 위해 초록 제출할 때 교수님께 구두 발표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승낙하셨다. 영어 발표와 한국어 발표 두 세션이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영어 발표로 지원했고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져 내게도 10분 ㅡ 사실 말이 10분이지 8분 발표에 2-3분 질의응답이다. 의 영어 발표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영어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어떻게 효율적으로 말을 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발표자료는 발표 전날에야 최종 제작 완료되었고, 따라서 발표를 준비할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첫 구두 발표를 마칠 수 있었고, 같은 실험실 선후배들이 격려해준 덕분인지 발표 전반에 관한 것들을 기분 좋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학회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다소 새롭게 느껴지는 분야를 중심으로 강연을 들었다. 기조강연은 LG 부사장인 유진녕 박사님이 하셨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DNA를 이용한 나노구조, 그리고 LC의 자기조립 등등의 분야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부임한 신임 교수들도 나와서 강연을 하는데 대부분 학부 졸업년도가 2000년대 초반, 심지어 2006년인 분도 계셨다. 아, 내가 학부 졸업년도가 2009년이니 나도 만일 좋은 성과를 내어 교수로 임용될 수만 있다면, 빠르면 5년 이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걱정이 되면서 다소 소름이 돋았다.


학회가 끝나고 서울역에 왔다. 원래 광명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기차 표가 이미 매진된 뒤라 서울역으로 곧장 가는 표를 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주였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나는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전철을 타고 홍대입구로 갔다. 시간은 아직 많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여기저기서 기타와 북을 들고 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뭔가 다양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거리 공연 모습에 좀 실망했다. 진짜 그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이었더라고 강하게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금요일 밤 사람은 넘치도록 많았고 이 거리 저 거리에 남녀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저 구석에서 피우는 담배연기는 모락모락 피어나 내가 걷는 거리를 침투할 듯 말 듯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클러치 백을 살까 고민하다가 클럽 에반스(Club Evans)로 갔다. 홍대에 있는 아주 유명한 재즈 클럽. 2-3년 전에 간 게 마지막인 것 같았다. 하도 오랜만에 간지라 위치를 잠깐 헛갈렸다. 진 토닉을 하나 시키고 공연을 감상했다. 예전같으면 1부를 듣고 늦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을 테지만 이제는 웬만해서는 막차 시간을 다 꿰뚫고 있으니 2부까지 다 듣고 집으로 향해도 별 무리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메인스트리트'라는 남성 퀸텟이었는데 재즈 감상자보다 팬이 더 많았던 듯한 분위기였다. 에반스만의 그 '학습하는 분위기'가 다소 덜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 퀸텟이 표방하는 게 '컨템포러리 재즈'라는데 난들 어찌할소냐. 그들의 스타일은 정말 확연하게 대중적이었고, 그래서 거칠지도, 실험적이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피아노 자리 바로 뒤쪽 아주 가까운 곳에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아주 느지막히 일어나 어머니께서 해 주신 스파게티를 먹은 뒤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가던 방향을 틀어 종로로 향했다. 간다 간다 해 놓고 여태 못 갔던 종묘를 가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종묘에 1,000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고 나는 그 내부를 조선 왕조 왕과 왕후들의 혼령보다도 더 활기차게 휘젓고 돌아다녔다. 종묘의 정전은 나를 압도하는 그런 힘이 있었다. 감실이 모두 닫혀 있고 제례악이 울려퍼지지 않는 정전의 뜰은 다소 삭막하기까지 했지만 그 웅장한 목조 건물이 보이는 그 위엄이 실로 대단했다.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한 번 꼭 찾아와 봐야겠다.


이제 학회 시즌은 끝이 났다. 다시 또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겠지? 공연 중에 정택동 교수님이 메일을 보내셔서 읽어보는데 논문 초안을 또 어찌 뜯어고쳐야 하나 잠시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내일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일이 내게 달려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쓰라린 순간이었지만 아무튼 내일이면 다시 내가 주도하게끔 만들 거다. 오늘 하루만 잠시 잊어버려야겠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