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가면 대략 3시간 정도는 미용실 안에서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온통 약품으로 범벅이 된 채 랩이 씌워진 내 머리 뒤에서 기계가 열을 내며 작동 중일 때에는 그저 온 몸에 긴장을 팽팽히 준 채 정자세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허리는 꼿꼿이, 엉덩이는 의자 안쪽으로 붙여 앉고, 머리를 약간 턱을 잡아당긴 상태에서 팔과 다리는 편하게.

자세가 바를 때 온전한 집중력이 발휘되는 법이다. 사실, 이 시간만큼 온 정신을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도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이런 치열한 여유(?)시간에 책을 읽게 되면 목차도 세심하게 읽고 넘어갈 정도로 '정독'하게 된다. 저번에는 GQ 남성잡지를 읽게 되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squire랑 GQ가 내게 주어졌지만 내 손은 주로 GQ를 선택한다.

나는 예전에 미용실이나 병원에 가면 늘상 볼 수 있는 '여성동아'와 같은 여성잡지를 보고 이 세상에서 패션잡지라는 것은 여성들을 위한 것인가보다 싶었다. 부담스런 입술을 쭉 내밀고 '우~'하는 모델을 표지로 삼은'Vogue'라는 패션잡지를 보고 싶다고 동생이 안달을 낼 때에도 그런 열망은 여자들의 영역에만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남자들(만)이 읽을 수 있는 잡지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거에 꽃미남 청년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는 심지호 씨가 근육질 몸을 만들어 Men's Health의 표지를 장식했다는 뉴스 기사를 봤을 때 저건 분명 '남성동아' 급으로 쳐 줄 수 있는 잡지라고 생각했다 :) 제목부터가 벌써 남성미가 물씬 넘쳐 흐른다. '남자들의 건강' ㅡ 물론 이 잡지가 과연 '건강'에 초점을 맞추었는지 '근육'에 초점을 두었는지는 나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전자에 초점을 두었다면 아마 발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폐간되었을걸.

아무튼 그렇게 혜성처럼(?) 내가 달려든 GQ라는 잡지는 또 한번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정말 잡다한 내용을 싣고 있는 이 잡지는 읽다 보면 어느새 공감이 가서 끄덕이다가 마음 속으로 박장 대소를 하다가 가끔은 감탄해 마지 않고 언제는 미친 듯이 좌절스러워진다. 기사가 날 그렇게 만들고, 사진 속 모델들이 그렇게 만들고, 그 모델들이 입은 옷과 액세서리의 가격이 날 그렇게 만든다.

특히 패션 관련 광고와 기사, 사진, 기획이 아주 줄을 잇는데, 볼 만하다. 일단 등장하는 남녀 모델들은 잘 생겼고, 몸이 근사하며 훤칠하기까지 하다.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좋아 보이고 또한 들어보지도 못한 상품 이름과 메이커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중요한 건 비싸다는 것이다. 옷은 정말 ㅡ 구닥다리 외래어들을 조금 빌려서 표현하자면 ㅡ fashionable하고 neat하며 modern함을 지닌, 이 시대 남녀의 패션을 선도하는 stylish한 옷들이다. 내 옷장에 걸린 옷들을 여기에 비교한다면, 당장 아파트에서 언젠가 열릴 법한 옷 바자회에 기증해야 할 것으로 보일 뿐이다.

옷을 별로 안 사 입는 ㅡ 혹은 못 사 입는 ㅡ나로서는 참 묘할 뿐이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옷을 사 입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기에ㅡ? 미용실 밖으로 일번가를 배회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저 사람들도 다 이렇게 옷을 입고 다니는 건가? 내가 당장 이 잡지에 나온 모델처럼 옷을 사 입으면 내일부터 나는 굶어야 하고 과외자리를 잡아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흔히 광고가 소비심리를 자극한다고하는데 여지없이 나도 그 명제를 참으로 증명해주는 사례가 된 것이다. 동생도 말하길 오빠가 만일 그 잡지를 정기구독하게 되는 날에는 옷 사고 싶어 안달 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아는만큼 보이기 때문이라고. 잡지를 통해 어떤 옷이 체형과 얼굴형에 맞는지, 옷을 어떻게 조합하는지를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손에 돈을 쥐고 있다면 바로 쇼핑을 통해 학습했던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ㅡ.

GQ를 계속 더 읽어보고 싶었는데 어느새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라고 미용사가 말한다. 이제 잡지를 내려놓고 자리를 떠야 할 시간. 그냥 미련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돈과 시간을 들여 잡지를 소비했던 내가 다른 소비를 또 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GQ를 정기구독 해볼까 했던 생각에는 '마귀가 준 마음'이라고 독설을 내뱉고, 그냥 옷장 안의 옷들을 위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아참. 오늘 머리한 건 아니다. (과거의 현재화? ㅋ)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