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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수준은 12년 전의 그것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발전해 있었다. 특히 버스터미널 같았던 알마티 공항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수준급의 국제공항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있어서 다소 아쉬웠지만, 도심을 달리는 차 안에서도 훤히 모이는 톈산(天山)산맥의 장대한 모습이며, 거리마다 빼곡하게 쓰여있는 키릴 문자를 보노라니 이곳이 정말 내가 기억하는 알마티가 맞구나 싶었다. 조직위에서 차량 운전을 제공해 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호텔의 수준 역시 준수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가 과히 나쁘지는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장 오기 전에 러시아어를 복습하겠다고 러시아어 교본을 한 번 쭉 훑어봤는데, 그래도 잊었던 러시아어 단어나 표현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웬만하면 무슨 말이든 러시아어로 먼저 해 보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는데, 원어민들이 빠르게 말하는 러시아어를 이해하는 것은 절대 불가였지만, 그래도 간혹 단어가 들리고 내가 짤막하게라도 답할 수 있었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다. 카자흐스탄에 처음 왔다고 하는 사람이 즐비한 가운데, 내가 알마티에 와 본 적도 있는데다가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와 있는 동안 오랜만에 카자흐스탄 음식들을 맛보았다. 삼사(самса), 맘파르(мампар), 만티(манты), 보르시(борщ), 베쉬바르막(бешбармак), 리표슈카(лепёшка) 등등. 샤슬릭(шашлик)이 제공되지 않은 게 다소 아쉬웠지만, 있는 동안 말고기와 양고기, 소고기와 닭고기를 끊임없이 먹었다는 데 위안을 삼고자 한다. 식사 시간마다 바쿠스(бахус)라는 이름의 코냑이 자주 등장했다. 물론 혼자 간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과 동행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식당이나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카자흐스탄 음식을 잘 못 먹는 분들이 더러 계셨기에 그래도 필요하겠거니 생각하며 삼겹살을 몇 점 집어 먹기는 했다.
심포지엄에 초청된 연구자들의 연구 내용을 흥미롭게 들었다. 특히 이번에 초청된 중국인 연구자들의 연구 발표가 흥미로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 한국인이나 일본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장비들을 갖추고 기초적인 내용부터 응용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풍족한 연구자원을 바탕으로 함께 경쟁하듯 연구하니 그런 것일까, 충격 지수(impact factor)가 높은 논문을 쓰는 것은 그저 기본이었고, 단순히 선진국의 연구를 답습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창적이거나 참신해보이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아니, 이런 측면에서 이미 중국은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예전에는 중국인들의 연구 발표를 보면서 그 형언하기 힘든 촌스러운 발표 스타일과 더불어 조잡해 보이는 연구 수행 방식을 보며 한 수 아래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우아하게 멋진 실험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함께 참석한 어떤 교수님은 농담 삼아 연구 사기가 저하될 정도의 충격이라며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하셨다. 이번 심포지엄 가장 마지막 발표가 정말 압권이었는데, 고압을 가해서 원자 배열의 구성을 조정함으로써 물성을 크게 변화시키는 연구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결과물이 검은 다이아몬드, 천연 흑연보다 더 강한 기계적 특성을 보이는 수퍼 흑연, 플라스틱 변형을 보이는(!) 세라믹 재료, 이런 기상천외한 물질들이었다. 왜 우리는 저런 연구를 하지 못했을까? 아니 할 수 있기는 했을까? 중국인들의 발표를 들으며 탄성을 내지르다가도 마음 속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이번에 주제강연 주제로 알진산 탄화를 선정했는데, 일본 규슈 대학의 교수님들이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 중 한 분은 전날 내 연구 주제와 비슷한 주제의 발표를 하기도 했다.) 또한 함께 참석한 국내 연구자분들이 이렇게 제조한 물질을 소듐 이온 배터리에 적용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을 해 주셨는데, 마침 학생연구원이 그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연구 응용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향후에 관련 연구 교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고, 그런 측면에서 이번 발표를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발표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아서 발표를 좀 우아하고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게 흠이었긴 했지만. (특히 발표 들어갈 때 러시아어를 좀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절어 머뭇거린 게 못내 아쉬웠다.)
어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왔고, 하루를 부모님 댁에서 보낸 뒤 지금은 내일부터 있을 섬유공학회 참석을 위해 제주도에 왔다. 생각보다 카자흐스탄 체류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짬을 내어 알마티를 구경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마지막날 공식 일정으로서 오이 카라가이(Oi Qaragai)에 들러본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기억이 있는 이 도시에 연구자로서 다시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좋았다. 언젠가 더 건설적인 목적을 가지고 생산적인 결과를 이루는 출장을 위해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