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동료 박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부산에 방문했다. 굳이 이 먼 길까지 수고롭게 오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단 일초도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흔한 연구원 내 식사 시간에 마주하는 시간보다 일생일대 중요한 하루 찰나의 순간에 잠깐 마주하는 시간이 더 강렬하고 값지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발걸음을 옮겼다. 다만 이번 주말동안 부산 발착(發着) KTX가 대부분 매진이었기에 ㅡ 설마 주말동안 부산 사직에서 KBO 야구 경기를 하는 게 영향을 준 건 아니겠지? ㅡ 금요일 밤에 오송에서 환승하는 KTX를 타야했다. 11시 즈음해서 도착한 부산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나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터덜터덜 부산광역시청 근처에 있는 (관광객 숙소로 변경해 활용하는) 아파트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다. 1박 가격이 7만원도 되지 않아 시설 수준이 의심스러웠는데, 생각보다 근사해서 무척 놀랐다.


다행히 혼인식은 토요일 정오 이후였고, 나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근처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헬스장에 가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ㅡ 기특하다! 다만 요즘 한국의 헬스장에서도 점점 공용 운동복과 샤워시설 내 세면도구를 일체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 부산행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너무 급하게 짐을 챙겨오느라 집에 놓고 온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체육복도 그 중 하나였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숙소 근처의 헬스장에 들어갔더니 운동복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결제를 취소하고 나와야했다. 결국 양정역 근처에서 운동복을 제공하는 헬스장을 하나 찾아 거기서 운동을 했다. 1일권이 10,000원이라서 별로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근사해서 여기서 또 한번 무척 놀랐다.


샤워시설에 세면도구가 없었기에 대충 물로만 샤워를 끼얹은 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마쳤다. 옷을 갈아입고 식장으로 향했는데, 혼인식이 열리는 식장은 숙소에서 3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라서 그닥 급할 것이 없었다. 건물 1층은 하객들로 인산인해였는데, 전 시간 결혼식의 하객과 다가오는 결혼식의 하객들이 한데 뒤엉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줄을 서서 겨우 축의금을 내고, 식당 쿠폰을 받고, 식의 주인공 중 하나인 신랑과 악수하며 파이팅을 외쳐 주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신랑의 행진을 보며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중간에 나와 축가를 부르는 동생분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고, 식후 촬영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가 뷔페 세 그릇을 아주 알뜰하고도 맛있게 다 해치웠다. 같이 밥을 먹던 부산대 교수가 '박사님 생각보다 많이 드시네요.'라고 놀라는데, 아니 뷔페에서 세 그릇은 기본 아니야?


식사를 마친 뒤에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부산 1호선, 3호선, 그리고 부산김해경전철을 타고 김해시의 수로왕릉(首露王陵)에 갔다. 굳이 부산에 와서 김해에 따로 들른 이유는, 본관(本貫)이 김해라서 ㅡ 그러니까 나름 여행의 컨셉은 '뿌리를 찾아서'였던 셈이다. 수로왕릉 경전철역에 내려 주변을 바라보는데 천변을 따라 지어진 아파트와 거대한 녹지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잘 정돈된 느낌이랄까? 수로왕릉에 다다르니 그 지구가 약간 경주(慶州)를 닮았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이곳은 가락국(駕洛國)의 왕도(王都)였던 이곳이니만큼 가야(加耶) 관련 유적들이 많았는데,  유적들이 다 비슷한 위치에 있어서 한바퀴 슥 돌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능, 가락국의 왕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혹은 거대한 언덕), 인도에서 건너온 전설로 유명한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의 능, 그리고 김수로왕이 태어난 알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설과 더불어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는 협박성 멘트로 유명한 구지봉(龜旨峰)을 차례로 돌았다. 신라의 거대한 왕릉에 비하면 수로왕릉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라의 역대 왕들이 여기에 제사를 지냈다는 점과 그 덕분에 이 왕릉에 실제로 수로왕이 잠들었는지 아닌지와는 무관하게 거의 2,0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많은 이들이 이 특정한 장소에서 한 사람을 기억해왔다는 사실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걸음을 만 보 이상 걸은 뒤 조금 출출해져서 소위 봉리단길(!)이라고 하는 거리를 지나면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곳에 뒷고기가 유명하다는 설명이 적힌 안내문을 보고 그냥 아무 뒷고기집에 들어가 고기를 주문했다. 3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기에 그걸 혼자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능했다. 뒷고기 3인분과 함께 내 온 김치를 맛나게 함께 구웠고, 밥 한 공기에 맥주 한 병 시켜 깔끔하게 비웠다. 처음 식당에 들어갈 때에는 혼자서 식사를 해도 괜찮나 싶었는데, 먹다보니 혼자 와서 나처럼 뒷고기에 술을 시켜 혼밥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이게 이 동네의 문화인가 싶었다. 참고로 뒷고기는 1인분에 6,000원이라서 3인분이라 하더라도 혼자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고 생각했을 때 요즘 치솟은 삼겹살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밥을 먹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 김해 고분군 위에서 바라본 도시는 무척 평화롭고 쾌적해 보였다. 날씨가 조금 더워서 외투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는데, 천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면서 마음도 한결 청량해졌다.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김해는 공장이 많고 시끄럽고 난개발이 된 전형적인 산업화 시절 공단 도시였는데, 이렇게나 여유롭게 사람들이 지낼 수 있도록 훌륭하게 개발된 지역이 있다는 것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 은퇴한 사람들이 김해에 가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