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그제는 무주리조트에서 스키를 타느라, 어제는 해인사를 다녀오느라 무리를 했다. 어제 오후부터 몸살 기운이 다시 오르는 게 아닐까 싶어 하려던 일체의 업무를 중지하고 그냥 밤 9시부터 자리에 누웠다.


二. 아침부터 익산에서 대구까지 강행군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경기 장소에서 멀지 않은 경산시의 한 호텔에서 전날 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다보니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려던 투숙객이 엄청 많았구나, 그래서 만실이었구나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三. 2월 하순 치고는 너무 추웠다. 아침 내내 영하의 온도였는데, 달리기가 막 시작할 시점부터 해가 떠오르긴 했어도 쉬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하의 온도에서 10 km 달리기를 한 적은 생애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마 다시는 이런 기온에서 달리지 않게 될 것 같다.) 


四. 이날 경기장에는 4만명이 달리기를 했다고 한다. 함께 달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첫 1~2 km 구간은 달린 건지 떠밀린 건지 모를 정도였다. 출발 점 근처에서 마라톤 대회의 성공을 위해 정계와 체육계 인사들이 단상에 모여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단연 인기가 제일 많았던 사람은 홍준표 대구시장이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일부러 그쪽으로 달려가 손잡기를 청했고, 시장도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했다. 


五. 오르막 내리막이 아주 길게 있었다. 초반부터 내리막이더니 반환점을 돈 뒤 오르막이, 지하차도로 달리다보니 내리막 뒤에는 오르막이 또 나타났다. 평소 달리기 연습은 평지와 트레드밀에서만 했더니 이런 경사면을 달릴 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당황했다. 7 km 지점의 아주 긴 오르막길과 9 km 지점에서 다시 나타난 오르막길은 무척 절망적이었는데, 그래도 뛰는 걸 멈추지 않았기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六. 날씨도 워낙 추운데다가 경사면 달리기가 하도 힘들어서 이거 1시간 이내에 못 들어오겠다고 지레 겁먹었는데, 다행히도 후반부 속도가 크게 줄지는 않아서 58분 남짓의 기록으로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온갖 악조건과 생소한 환경에서도 잘 달려서 원하던 시간 내에 완주하게 된 것에 크게 기뻤다. 


七. 그런데 완주한 뒤 엄습한 추위를 뚫으며 다시 경산까지 가는 길에서 엄청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10 km 는 평소에서 동네에서 원하면 뛸 수 있는 거리인데 이 먼 대구-경산까지 와 1박을 하면서 이 고생을 했다는 게 너무 한심스러운 것이었다. 그 결과 손에 쥔 건 완주 기념 메달과 간식, 떡국? 뭐 대단한 극기의 드라마가 있었건 것도 아니고 환희에 찬 파이팅 넘치는 혈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예정된 다음 마라톤은 뭐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전북 지역에서나 열리는 대회만 참석을 고려해야겠다. 해냈다는 기쁨이 부재한 스포츠는 육체적 노동에만 그칠 뿐이거늘, 이번 마라톤 대회 때문에 전부터 느낀 은근한 정신적 부담감과 재정적 지출은 별달리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八. 원래 완주 후 경산에 있는 갓바위를 보러 가려고 했는데, 추운 날씨 탓에 모든 것을 다 취소하고 근처에 있는 스파에서 씻고 몸을 녹인 뒤에야 익산으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3시간을 또 운전해서 가야 한다. 내가 멍청했지, 멍청했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