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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오랜만에 본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다룬 김신혜 무기수 재심 관련 내용을 보며 내내 안타까웠다. 그 무엇보다도 마지막 10분 정도에서 오랫동안 독방에서 재심을 기다려 온 당사자가 망상(妄想) 장애를 겪는 장면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자신의 방어와 합리화를 위해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 속으로 자신을 욱여넣어야 했던 것일까.
2.
오늘 성찬례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종교의 창시자들도 어떤 이들에게는 망상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신의 계시를 받았다, 깨달음을 얻었다, 신의 아들이다, 이 모든 주장들은 그 나름의 세계관 안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바깥에서 보면 하등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니 말이다. 내가 옹호하는 기독교 교리도 냉정하게 무신론자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허깨비같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사도 바울로도 이미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14)
라고 했던 것으로 미루어보면, 부활이라는 기독교 중심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애초에 이 모든 신앙 구조는 헛것에 불과한 것이 맞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와 같은 세계 종교들은 이런 망상과도 같은 논리를 가지고 수억 명의 신자를 모으고 거대한 종교적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가르침들이 진실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망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일견 말이 되지 않는 망상일지라도 그 논리를 받아들이고 가르침대로 살았더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망상으로 치부되지 않고 철학이 되며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닐까? 망상의 결과가 폭력과 분노, 격리가 아닌 사랑과 자비, 공동체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권장할 만한 망상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생명력 있게 살아남은 종교가 되었다고 본다.
3.
종교가 망상의 일종으로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망상'이라는 약간 모독적이기까지 한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왜 다른 종교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리고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전적인 태도를 가지면 안 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4.
그런데 요즘 이 '사회적으로 유익한 망상' 내부에서 '사회적으로 유해한 망상'들이 암세포처럼 커가고 있는 듯하다. 종교를 가진 이들조차 서로 편을 갈라 상대편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작금의 현실은, 분명 종교를 처음 세운 이들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나는 유해한 망상이 유익한 망상을 집어삼켜 본래의 취지와 목적하는 바를 가리울까 심히 염려된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리라 기대되는 망상일 뿐이며, 그 망상이 지향하는 바는 바로 사랑과 자비, 공동체이다.
이것을 잃은 이들은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다른 망상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