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을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 혹독한 감기에 고생하고 있다. 사실 감기의 초기 증상은 귀국 전날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Opernhaus Leipzig)에서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을 보고 있을 때 느껴졌다. 뭔가 목이 칼칼한 느낌이랄까, 코로나-19의 재림은 아닌가 문득 궁금하기도 했지만, 귀국 후 몇 차례 시행한 자가 검사에서 그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귀국 후 닷새째인 오늘에 와서야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은데, 아마 주말 중에 정리해서 올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일단 이 글은 지난 1달간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1. 파견 업무의 정점은 마지막 주


사실 파견 일정을 잡으면서 독일 측과 상의하여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이번 파견(08.26.~09.27.)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마지막 주 화~목(09.24.~09.26.)에 있었다. 화요일에는 KIST 라이프치히(Leipzig) 공동 사무소 개소식, 수요일엔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준비를 위한 워크숍, 목요일엔 드레스덴(Dresden)에 있는 프라운호퍼 세라믹 기술 및 시스템 연구소(Fraunhofer IKTS)에 방문하는 일정. 자료를 준비하고 챙기는 과정에서 한 주동안 잠을 오랫동안 잘 수 없었고, 게다가 신경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던 탓에 아마 이 일정이 끝난 직후 지친 내가 바로 감염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일단 HTWK Leipzig 측의 배려 덕분에 공동 사무소 개소(開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파견 첫 주에 공동 사무소로 지정될 장소에 가서 상태를 확인했고, 미리 제작해서 가져간 현판을 달았으며, 파견 후반부에는 아예 그리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곤 했다. 화요일(09.24.) 아침에 라이프치히를 직접 찾아주신 분원장님을 모시고 라이프치히 시내 몇몇 명소를 안내해드렸고, 뒤에 합류한 KIST 연구원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개소식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HTWK Leipzig의 부총장, 공대 학장이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우리는 사무소 개설의 의의, 향후 협력 의지 강화를 되새겼고, 샴페인과 함께 사무소 개소식을 잘 마쳤다. 이후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도 아주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09.25.) 아침에는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연구자들을 맞이했다. 본래 그 다음날부터 양일간(09.26.-27.) 진행되는 EureComp 과제의 미팅을 앞두고, Böhm 교수가 관련 연구자들을 하루 일찍 초대한 것인데, 흔쾌히 한국과 협력하는 모음에 참석하고자 이른 독일행을 결정해 주어 모두에게 감사했다. 왜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 연구과제 수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지 사회적 배경과 함께 여러 현황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 기관소개 및 각 연구진들의 연구 주제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Böhm 교수와 내가 지난 몇 주간 의견을 교환하며 정해 둔 몇 가지의 주요 연구 주제를 놓고 자유로운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사실 이 시간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자유 토론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토론 시간 중에 내가 사실상 '발제'를 하는 역할이었는데, 내가 별 무리없이 과제 관련 내용을 절 전달할 수 있을는지, 이런 식의 모임을 진행해 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걱정이 참 많았다. 그런데 정말 그건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심지어 다른 몇몇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아예 발제를 해서 2025년에 뜨게 될 과제 주제에 대해 얘기했고, 그 중에서는 Böhm 교수와 내가 최종적으로 '이건 토론 주제에서 빼자'고 한 게 그대로 들어있기까지 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꽤나 후보를 잘 골랐던 것이고, 그 중에서도 모두에게 흥미가 될만한 주제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얘기한 셈이었다. 아무튼 생산적인 토론 시간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잠시 집으로 돌아가 개인 정비(?)를 한 후, 캠퍼스 내 공간에서 진행되는 바베큐 파티에 참석해서 온갖 종류의 소시지와 고기를 원 없이 먹으며 그간 품었던 걱정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 다음날(09.26.)은 아침부터 중앙역으로 건너가 드레스덴행(行) 기차를 탔다. 드레스덴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운좋게 이른 시간 체크인을 하고나서 바로 옆에 있는 일식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나는 나원진 박사와 함께 Fraunhofer IKTS 분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일하시는 한국분들이 차량으로 마중을 나와주셨다. 본원만큼이나 꽤나 넓어보이는 Fraunhofer IKTS 분원은 주로 재료의 비파괴검사를 연구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비파괴 검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연구자는 아니었지만 거기서 다루는 다양한 검사법을 보며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더 놀랐던 건, 발표를 하는 독일 박사가 수년 전에 한국에, 그것도 KIST 전북에 가서 맴돌이 전류(eddy current)를 기반으로 한 비파괴 검사 장치를 설치하고 교육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장비가 우리 연구원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그 장비를 새로 살리고 교육을 제대로 받게 하는 데 좀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3시간에 걸친 인사와 소개, 실험실 탐방을 마치고나서 우리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츠빙거(Zwinger) 근처에 있는 Sophienkeller라고 하는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대접했다. 다른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합류하신 한태영 박사님도 뵈었고, 본원 쪽에서 다른 연구 분야 소개 및 탐방을 진행해주셨던 무려 부서장 급의 Mihailis Kusnezoff 박사도 함께 했다. 작센 지역의 음식을 주로 취급하는 이 음식점은 keller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지하에 있는 꽤 넓은 식당이었다. 중간에 악기를 들고 두 남녀가 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흥겨웠다. 페더바이서(Federweißer)라고 하는, 아직 본격적으로 발효되지 않은 신선한 느낌의 와인도 두 잔 정도 들이킬 수 있었다.


그렇게 일정을 다 마친 다음날(09.27.), 다른 분들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차를 타고 프라하(Praha)로 건너갔고, 나는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와 집 청소와 남은 빨래, 그리고 드디어 짐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오후 3시쯤에 Böhm 교수와 만나 작별을 기념할 커피 한 잔씩을 했다. 집에 다시 돌아와 마무리를 하고, 이제 정말 떠날 시간!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문자를 보내 모든 것을 정리했으니 열쇠는 집 안에 둔 채 떠나겠다고 말했고, 그간 모든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친절히 대답해 준 주인에게 감사하다고 연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출국할 때보다 더 뚱뚱해지고 무거워진 캐리어를 운반해야 했고, 중앙역 근처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호텔에 체크인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탁이 생각나서 시내에 있는 WMF 상점에 가서 과도 세트를 샀다. 100% 독일어로만 얘기했는데, 뭐 다행히(?) 내가 뜻하는 바가 다 전달되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 뒤에 서두에서 밝혔듯이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았다. 정말 폭풍같이 흘러 간 한 주였다.



2. 향후 독일과 협력은 강화될 것


파견의 목적이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향후 KIST 전북은 독일과 협력을 더 폭넓게 진행해야 할 운명이 되었다. 최근 독일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연구 과제를 제안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고, 실제로 이번 파견 기간 중에 1차 통과가 되어 자축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올해만 벌써 두 명의 대학원생이 HTWK Leipzig로부터 KIST 전북으로 방문 연구를 수행했고, 이민욱 박사님이 석달 간 독일 기술 훈련을, 이번에 내가 1달 간 파견을 갔으며, 내년에는 나원진 박사가 작센 주에 체류할 예정이니 인적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아, 11월에는 드레스덴에서 학생 하나가 방문 연구를 온다. 물론 KIST 측에서도 학생을 독일로 보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아무튼 인적 교류도 활발해 지고 있다. 공동연구논문도 추가로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2022년부터 재개된 대독(對獨) 협력 사업은 꽤나 순항 중에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 주도를 통해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이번 파견 기간 중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호라이즌 유럽 워크숍은 대한민국 정부가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기획된 일종의 준비 모임이었고, 이렇게 된 이상 내년에는 무조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과제 제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부터 한국이 참여하는데, 한국 측 기관들이 컨소시엄에 들어가 있지 않다면 정부 입장에서나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ion) 측에서나 너무 망측한(?)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9월 4일, 드레스덴 지역을 두루 방문한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역시 독일과의 다양한 과학 협력을 강조하며 특히 수소 에너지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만큼, 전북도 역시 수소 관련 협력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기왕 그런 분위기라면 이번 기간을 통해 쌓아놓은 관계를 기반으로 그러한 요구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그날 도지사님과 악수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3. 독일어가 늘었다.


1달 동안 독일어와 깊이 친하게(?) 지내다 보니 독일어가 금방 늘었다. 물론 주말이나 밤, 이동하는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같이 가져간 『최신 독일어』라는 문법책을 일정 분량씩 읽은 끝에 통독하게 된 게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마치 16년 전 스페인 살라망카(Salamanca)에서 1달여 간 생활하면서 스페인어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과 매우 유사했다. 대체로 독일 사람들은 영어를 다 할 줄 알았지만, 웬만하면 초급 수준의 독일어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고, 나중에는 물건 구매나 호텔 체크인 등은 모두 독일어로 소화 가능할 수준이 되었다.


일단 독일어 문법 자체가 좀 더 정교하고 복잡한 영어 문법 정도이다보니 성문(成文)영어로 문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숙지한 나로서는 (최신같지 않은)  『최신 독일어』의 문법 설명 방식은 무척 익숙하고도 친근했다. 또한 격(格, case)의 개수나 굴절(屈折, inflection) 측면에서는 러시아어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보니 문법책에 적힌 그 수많은 문법 사항들을 숙지하는 데 정말 아무런 어려움도, 저항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이 책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가기 전에 이미 이 책을 구매했던 2009년부터 소위 '깔짝거리며' 초반부를 계속 들여다본데다가 올해 초 시원스쿨에서 제공하는 '독일어 진짜학습지 첫걸음' 온라인 강의를 통해 A1 수준의 독일어는 어느 정도 이해했던지라 학습에 가속이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내 독일어 실력은 스페인어보다는 다소 약하지만, 최근에 배웠던 러시아어나 일본어, 중국어, 페르시아어(?)에 비하면 월등히 나은 수준이다. 아니 어쩌면 스페인어를 DELE 시험 친 이후 약 8년간 딱히 쓸 일이 없었던지라 지금 독일어가 한창 물올랐을 때일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라이프치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들른 서점에서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초록책', '파란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문법책 두 권을 샀는데, 기왕 시작한 공부 끝까지 잘 이어가면 두고두고 잘 쓰일 것 같다. 항상 독일 친구들에게 독일어를 배운다고 해 놓고서는 큰 진전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유창하게 독일어를 말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 꽤 인상적일 것 같다.



4.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들의 생활을!


라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한국 음식은 딱 한 번, 그것도 여행 중에 라이프치히에 찾은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한 번 갔을 따름이다. 거의 대부분 독일 사람들의 음식을 먹었다. 집에서도 소시지를 사서 구워 먹고 독일식 감자 요리인 크뇌델(Knödel)이나 카르토펠푸퍼(Kartoffelpuffer) 등을 데워 먹곤 했다. 라이프치히의 맥주인 고제(Gose)와 지역 와인도 가끔 곁들이면서 말이다. 독일인의 국민 음식이 되어버린 되너(Döner)는 물론이고, 작센에서 자주 해 먹는 자우어브라텐(Sauerbraten)도 곧잘 먹었다. 독일에 관광이든 일하러 온 사람이든 입을 모아 독일 음식은 맛이 없다, 독일 음식은 하나같이 짜다 이렇게 불평하는데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짜기로는 우리나라 반찬과 국이 더 짜다. 단지 눈에 보이는 그 음식의 염도가 우리의 일반적인 상상에 비해서 짜서 그런 것일 뿐이지. 반찬과 채소가 다양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서로 다른 식문화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건 불평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면 더 사서 먹든가. 다양한 고기 요리, 감자 요리, 곁들여 먹는 맥주.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리고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즐기는 것들도 하나씩은 체험해보려고 했다. 성 토마교회(Thomaskirche)에서 금요일에 봉헌되는 모테트(motet) 기반 루터교 예배는 물론이고,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의 오케스트라 공연과 오페라하우스의 오페라 공연 관람까지. 그리고 여유가 있을 때 버스를 타고 내려가 라이프치히 근교에 있는 호수 중 코스푸덴(Cospudener See)에 가서 서늘한 늦여름 공기도 만끽했는데, 여기는 탈의실이 따로 없어서 그냥 모래장 위에서 훌러덩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매우 기묘한 경험이었다. 한 가지 제일 아쉬웠던 것은 이 지역 축구단으로서 분데스리가 소속인 RB Leipzig의 경기 날짜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축구장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까지 해냈다면 아주 독일스러운(?) 것은 죄다 경험하는 것이었을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파견 기간 중에 주로 영어로 예배하는 교회에 갔다는 것이다. 독일어 실력을 쌓아 독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내 자그마한(?) 소망이다.



5. 귀국일


그토록 완벽하게만 보이던 독일 파견 일정을 제대로 말아먹은 건 귀국날이었다. 앞서 얘기했지만, 감기 기운이 어느 정도 있었고, 이걸 달래려고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채 뮌헨으로 향하는 ICE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뮌헨에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이 너무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어라, 저 남자는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전통 의복인 레더호젠(Lederhosen)을 입고 있네? 아, 이날은 9월 28일.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지금 뮌헨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기간이다.


뮌헨 중앙역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프랑크푸르트 기차역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타는 곳에 내려 S반 기차표를 사고 S반 역으로 내려가는데 거기서조차 사람이 너무 많아 경악했다. 겨우 S8을 타고 뮌헨 공항으로 가는데, 아주 지옥철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종착역이 갑자기 바뀌고 연착이 이어진 끝에, 원래 기대했던 도착 시간보다 30분은 더 늦어 도착했다. S반을 타고 가는 도중 내 주변 사람들이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내 옆에 서 있던 키가 무지 큰 청년이 스페인어로 관광객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대화를 엿들어보니(?) 원래 농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은퇴했고 네덜란드로 가는 길인데 자기 집은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가는 것보다는 독일 뒤셀도르프(Düsseldorf)로 가는 게 더 나아서 공항 가서 뒤셀도르프행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얘기가 나오자 스페인 할아버지들은 또 축구 얘기를 신나게 하면서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이 아주 굉장했다며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청년이 키를 얘기할 때 dos doce (=doscientos doce, 즉 212)라고 얘기하길래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내질렀다. 나도 스페인어로 뭔가 대화에 낄까 말까 고민했지만, 여전히 지옥철이고 긴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로 지쳐있어서 그냥 듣기만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겨우 뮌헨 공항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여기는 사람이 더 많았다. 원래 세금 환급을 받으려고 서류를 준비했지만, 저 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갈 고생을 생각해보니 고작 10~20 유로 정도 되는 세금 환급을 받겠다고 공항 내에서 더 오래 서 있기 싫다는 생각만이 굴뚝같았다. 셀프 체크인 뒤 위탁 수하물을 태그를 발급 받아 부치는데, 혹여나 이코노미 승객 최대 무게인 23 kg 를 초과하면 어떻게 하나 정말 고민이 많았다. 사실 초과했다 ㅡ 23.5 kg. 그런데 그 정도는 봐 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캐리어를 위탁 수하물로 보내니 좀 나은가? 아니었다. 한 손에는 정장 가방 ㅡ 거기에는 정장 외에 외투도 들어가 있었다. ㅡ, 등에는 빵빵해질대로 빵빵해진 백팩, 다른 쪽 팔에는 너무 실내가 더워서 벗은 뒤 한 팔에 칭칭 돌려 감아 둔 외투 두 벌. 보안 검색대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30분 남짓을 기다려서 겨우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고, 나는 일단 탑승구 근처로 가기 전에 밥부터 먹었다. 귀국하면 참석자들과 함께 나눠 마실 코냑을 산 뒤 탑승구로 가는데, 너무 피곤한 것이었다.


그렇게 겨우 비행기에 들어가 안락함을 누리나 했더니, 기내식 반입의 지연으로 인해 출발은 거의 1시간 정도 늦어졌고, 이상하게 이날따라 비행기 안에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토마토 주스와 맥주를 섞어서 마셨는데 갑자기 열이 올랐고, 목의 칼칼함은 이제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복도석을 선호하는 내가 안쪽 중앙석을 배정받게 된 것도 영 불편한 점 중 하나였다. 밤 비행기라서 독일어 교본을 꺼내서 공부할 엄두는 내지도 못했고, 다만 괴테(Goethe)의 『파우스트(Faust)』를 절반 이상 읽었을 따름이다. 기묘하게도 비행기 내에서는 모두가 잠에 든 시각을 제외하고는 승객들의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들 독일에서 유행하는 감기에 걸린 건가? 나처럼?


불행히도 일정의 끝은 찾아오지 않았다. 귀국 바로 다음날에 원래 HL만도에서 NMR 관련 강의를 하도록 요청받았기에 짐을 정리할 새도 없이 다음날 판교에 가서 강의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 목이 갈라지고 기침이 막 치밀어오르는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잘 무마해가며 3시간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날 일정을 소화하는 바람에 푹 쉴 기회를 놓쳐서 감기가 좀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마음도 있긴 하다만, 그래도 회사 분들이 강연을 잘 들어주시고, 의도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서 강연자로서 기분은 좋았다.



이렇게 2024년의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던 독일 파견을 잘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고, 여러모로 크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리 연구원의 성원 덕분이었다. 보답하는 의미로서 현재 책임자로 있는 글로벌 모빌리티 과제의 성공적인 연장과 더불어 향후 한국-독일 간 협력 강화의 결실을 맛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