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얼마 앞두고 입사 동기 박사와 연구원 내에 자리잡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최근 그 박사는 조금 독특하게 생긴 플래너를 샀는데, 거기에 자신의 원대한 비전과 근미래 및 조금 더 먼 미래의 꿈을 적어놓고 매일같이 이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또 무얼 할 것인지 적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면 그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어 자신의 큰 계획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또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굉장히 좋은 말이었다. 물론 나처럼 매주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주의 성찬례가 일종의 '나를 돌아보기'와 같은 시간이기에 늘 이것을 반복적으로 실천하고 있긴 하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내 꿈은 사실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은 곧 내 자아와 내게 심겨진 비전과 접속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박사는 뒤이어 내가 항상 반복적인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이뤄나간다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니 정말 내가 그런가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라든지, 유튜브를 만든다는지, 골프 연습을 한다든지, 언어를 익힌다든지, 그런 일들을 굉장히 성실하고도 꾸준하게 진행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했다 ㅡ 애석하게도 그 일들 중에는 연구라든지 논문쓰기같은 게 없어서 약간 민망하기는 했지만. 하긴, 연구는 업무 시간 내내 하는 것이니 업무 외 시간에까지 연구를 이어서 하는 것은 당장에는 좋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시간을 아깝게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루 이틀 연구하고 그만 둘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반복적으로 내가 업무 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봤다.


- 출근하자마자 실용한자 책에 등장하는 한자 중 명백하게 아는 것이 아닌, 약간 아리송하다고 생각하는 한자 10자를 10개씩 쓴다. 점심 먹고 나서 커피나 차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마저 10자를 10번씩 더 쓴다. 최근에 '겨자 개(芥)'자를 보고, 초계국수의 '계'가 여기서 왔을 거란 생각을 했다.

- 추운 겨울이 되어 야외에서는 골프 연습을 못하기에 당구장에 가서 1시간 정도 공을 치다가 헬스장에 가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 집에 돌아오면 볼륨을 아주 작게 낮추고 아농(Hanon)의 연습곡을 치고, 바흐(Bach)의 인벤션(Invention)을 1번부터 15번까지 쳐 본다.

- 씻고 나면 유튜브 스크립트를 만들거나 영상을 만든다.

- 그래, 글을 쓴다. 어디에든.

- 요즘에는 자기 전에 발관리(?) 유튜브 영상과 당구 유튜브 영상을 보고 모바일 Star Realms 게임을 두어 판 하고 잔다.


쓰고 보니 뭘 반복적으로 하긴 하는데... 뭐, 이렇게 해도 내겐 도움이 되는 거겠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