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배경 음악으로 SES의 「Love」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되고 멋진 노래구나'라고 감탄하던 중, 이 노래와 관련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바로 3집 앨범을 내고 이 곡으로 컴백한 SES는 KBS '뮤직뱅크'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는 것. 가사가 심의에 걸렸거나 안무나 의상이 선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ㅡ 당시 SES는 앨범 컨셉상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는데 그게 바로 문제가 되었다.


IMF의 엄혹함이 가시지 않았던 그 시기, 대한민국 대중문화에는 검열의 그림자가 가실 줄을 몰랐고, 공영 방송이었던 KBS는 '슈퍼선데이'나 '가요톱텐'과 같은 예능 및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폐지한 바 있었다. 더 나아가 KBS는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에게 각종 규제를 가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두발 단속이었다. 염색한 연예인은 모자를 써서 머리를 가리든지 검은 머리카락으로 색깔을 돌려놓아야 했는데, 그게 얼마나 엄격했냐고 하면 길고 윤기나는 긴머리를 자랑하는 김경호도 이 시기만큼은 KBS에 나올 때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모자를 쓴 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불렀다. 하지만 SES는 곡의 컨셉과 분위기를 중시해서 염색을 절대 풀지 않았고, 그 결과 KBS에서는 이들의 출연을 한동안 금지했다. 후속곡인 「Twilight Zone」에서 SES 멤버들이 검은 머리로 복귀하고 나서야 KBS 프로그램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염색이 사회 기강을 무너뜨리고 사치 풍조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니? IMF가 터지기 전, 초등학생이던 나는 가수 현미의 곡 「총각김치」가 과거 심의에 걸려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이유가 '매큼한 총각김치 새큼한 그 맛'이라는 가사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등급의 어떤 사회 병폐적 현상은 비단 군사 정권 시대의 얘기가 아니라 90년대를 사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물론 '입닥치고 보기나 해!'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유명세를 탔던 그 해의 영화 『노랑머리』가 가져다 준 파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염색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지금과는 무척 달랐다손 치더라도 염색하기만 하면 방송 출연을 불허한다는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규제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들 KBS의 방침을 문제삼지 않았고, 오히려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ㅡ 다만 그때는 그게 좋고 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제 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온국민의 단결과 나라사랑을 보여주는 예로 자주 언급되었던 '금 모으기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및 저녁 뉴스에는 얼마나 많은 금이 모였는지, 또 누가 금을 기꺼이 희사했는지, 그 금붙이와 관련된 사연은 무엇이었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매일같이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IMF의 이유 중 하나로 국민들의 사치 풍조를 탓하곤 했는데,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그와 관련된 어떤 부채 의식을 느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모두가 마땅히 집에 있던 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와 같은 금융 위기의 상황에서 금처럼 안전한 자산을 기꺼이 내놓는 대가로 대외신용도를 잃은 국가의 화폐, 곧 대한민국 원화를 받는다니! 지금의 시선으로는 금융 문맹이나 저지를 판단착오와 같은 행동이었지만 정말이지 몇달 만에 수백 톤의 금이 모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실상 국가부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돌반지나 금귀걸이를 내놓는 행렬에 참여한 평범한 국민들이 아닌 부패한 사회, 경제, 정치계의 리더들 아니던가? IMF를 극복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면서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고, 20세기말에 금을 내놓지 않았던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20년도 훌쩍 지난 지금, 국가재정이 어려운 상황에 있으니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현물을 희사하자는 운동을 정부가 강행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놓는 행렬에 동참할 것인가?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ㅡ 다만 그때는 그게 좋고 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


문득 몇 가지 경험과 기사제목들이 스쳐 지나간다 ㅡ 코로나19 확진 직후 내 신용카드 결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보건당국에서 카드사를 통해 전송한 통지 문자, 하나의 약병으로부터 한 회(dose) 더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해 주는 최소잔여형 주사기(LDS)의 개발을 두고 K-방역의 성과라고 극찬했던 대통령, PCR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올 때까지 격리된 병실을 떠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던 환자, 운동할 때 마스크를 써 달라고 요청하는 트레이너를 따가운 눈총으로 쳐다보던 어떤 피트니스 센터 회원, 가는 곳마다 QR 코드를 찍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모임 인원 수를 스스로 제한했던 지난날들, 마스크 착용 및 백신 접종 의무에 대해 반발하는 유럽 사람들을 보며 '선진국이라는 게 죄다 글러먹었구만!'이라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들.


20여년 전의 상황을 두고도 '다만 그때는 그게 좋고 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20여년 후에도 지금의 상황을 두고 똑같은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에 대한 오늘의 역사적 판단은 무효하다. 하지만 어제가 충분한 과거가 되는 어느날, 과연 우리는 지금을 추억하며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혹여라도 '다만 그때는 그게 좋고 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을는지.


그래서 약간은 두렵고,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고, 다소 허무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