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당구도 칩시다]
Date 2010.09.20


오늘 저녁에 실험실 형들과 당구를 두 게임 쳤다. 나는 무적의 30(?)이었으므로 설사 빨간 공을 모두 맞추지 못하더라도, 혹은 흰 공과 노란 공이 서로 맞부딪히더라도 벌점을 얻지 않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특권을 둘째치고라도 오늘의 플레이는 최근 5년간의 게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것이었다. 특히 세 개를 연달아 잘 '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나는 당구를 매우 불량하고 무익한 놀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당구장 안의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자장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뭔가 한량한 아저씨들, 그리고 자율학습시간에 도망 나온 친구들이 애용한다는 장소 중의 하나가 당구장이라는 사실들은 나로 하여금 당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인식이 한 번 크게 깨진 것이 내가 고 2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사구 전국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하여 부상으로 상금과 당구대를 받은 일이었다. 학교 체육관에 설치된 이 당구대는 '과연 불량한 놀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심대한 질문을 내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학부에 들어와서 추가된 놀거리 중에 하나가 바로 당구장이었다는 사실이 컸다. 사구는 너무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들었지만 포켓볼은 신나게 칠 수 있었다. 당구도 즐길 수 있으면 충분히 재미있는 건전한 놀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당구는 진입장벽이 높다. 어느 수준이 아니고서는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이 해 봐야 하고, 많은 상황을 다뤄봐야 한다. 물론 어느 스포츠나 다 똑같이 처음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당구는 '안 그래 보이는데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더 초심자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게 있다. 일반적으로 '당구 따위에 뭐가 있겠어?' 하고 달려들기 때문에 진지하게 배워보려는 생각보다는 '에이 뭐 이런 거 해도 안 될 거 때려쳐!' 하는 경향이 다른 스포츠보다는 좀 더 진입장벽이 높아보이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얇게/두껍게/아래로/밑으로' 등등을 잘 구별하지 못하겠다. '에이 될 대로 되라'라는 마음으로 치던 것을 진중하게 접어버린 게 얼마 안 되었다. 물론 아버지의 (비아냥이 늘 스며든) 훈육 덕분에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무엇보다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거?

그래도 볼링과는 다르게 당구에는 별로 욕심이 없다. 볼링은 애버리지가 150을 넘어 200까지 쭉쭉 넘어갔으면 좋겠지만 당구는 그렇게 실력이 늘어널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되기도 영 바라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과 맞붙었을 때 얼굴만 찡그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50? 80? 그 정도 실력을 만드는 것도 상당한 기간과 경기 수를 요하는 것이지만, 그게 내 큐에게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