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과 변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이 문구가 학교 미술관(Museum of Art) 앞에 설치된 조형물(이라기엔 단순한 나무 상자)에 적혀 있는 걸 봤다. 언뜻 보면 허세같기도 한 이 문구는 저 유명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말이다. 최근 미술관의 기획 전시가 '이동'에 관한 것으로 정착하지 않고 이동 가능한 노마디즘(nomadism)과 관련된 것인데, 아마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데려 온' 명언 중의 하나인 듯 싶었다.


사실 바그너가 이런 말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바이에른의 국왕인 루트비히 2세(Ludwig II)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궁핍하고 고단했던, 그리고 혁명에 가담한 죄로 추방당해 살아야 했던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 덕에 훌륭한 악극을 쓰며 그 명성을 후대에까지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런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방황과 변화를 끊임없이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정된 삶, 정착된 환경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바그너의 말은 신선하게 들리고 뭔가 내 안에 숨겨놓은 일탈을 향한 열정을 자극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내 '그건 너나 가능했던 일이지'하는 차가운 냉담으로 끝을 맺는 것,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누군들 방황하고 변화하는 흐름에 몸을 맡겨 일탈과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일탈과 방황, 자유와 변화라는 것이 자못 불안정하게 느껴질지라도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이 '삶에 재미가 없어', '내 삶은 지루해'라고 하소연하는 걸 들어보면 결국 그런 어긋남의 요소들이 삶에 필요하다는 사실에 모두들 긍정하게 될 것이다 ㅡ 문제는 그렇게 어긋나도 제자리는 지킬 수 있는 사회적 보장 장치를 내가 소유하고 있는가로 귀결된다. 슬프게도 대부분 없다.


역설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니 안정된 것을 구하지 말고 치열하게 움직여보고 겉돌아 보기도 하고, 실패도 겪어보고, 다른 양상으로 변태도 해 보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분명히 보통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저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바그너는 저 말대로 방황과 변화를 사랑한 결과 수많은 적들을 만들고 온갖 비아냥과 비판은 철저히 다 들었지만 결국 불세출의 음악 영웅으로 남지 않았나. 그에 미치진 못할 지라도 안정되고 변화 없는 삶을 구가하다가 '삶이란 덧없는 것이었다.' 라는 비극적인 개탄을 남기는 노인으로 죽지는 말아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