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7년만이다. 최초로 장염(사실 단순한 장염이 아니라 식중독에 의한 이질) 에 걸린 것이 2007년 3월의 일이었다. (용케도 2007년 3월 20일자 일기에 그 사실을 짤막하게나마 기록해 두었다.) 강릉 여행 이틀째 나는 심한 복통과 함께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물설사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아마도 전날 교동반점에서 먹은 짬뽕, 혹은 주문진수산시장에서 샀던 횟감, 혹은 밤새 놀면서 들이켰던 보드카 기반의 음료, 혹은 싸늘했던 숙소 내 공기, 혹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임하면서(?) 장염으로 고생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용석이의 의견대로 지사제를 한 번 복용했지만, 뱃속의 그 모든 내용물들을 다 빼낸 뒤에 ㅡ 그것도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1시간 관람과 드라이브를 마칠 때까지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변의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ㅡ 복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경포대 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화장실에 8~9번은 가서 죽죽 뽑아냈던 것 같다.


월요일에 일어나보니 상태가 너무 좋아서 아침, 점심은 집에서 끓인 흰죽으로 해결했고, 저녁은 집에서 무 맑은 장국에 쌀밥을 말아 먹었다. 다음날 아침도 그렇게 먹었고, 화요일 점심부터는 일상적인 식사를 했다. 화요일 저녁에는 심지어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트라토리아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다!


그랬다가 수요일 밤,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 크게 된통 당했다. 거의 3일간 변을 보지 못했었는데, 이날 1시간동안 화장실에서 모든 것이 다 '제대로 소화된 상태'에서부터 '제대로 다 소화가 안 된 상태'로 나오는 것을 끝끝내 다 지켜보고야 말았다. 당장 항문의 상태가 걱정될 정도로 1시간동안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다. 다행히도 강릉에서와같은 물설사 일변도는 아니었으므로 상태가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는 있었다.


잠에 들기 전에 쌀을 꺼내서 물에 불려놓고 잤다. 중간에 한 번 잠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속을 비워낸 것이 전부였다. 오늘 아침은 내가 불려놓은 쌀로 죽을 해서 먹었고, 점심은 거기서 남은 죽을 학교로 싸 가져와 먹었고, 저녁은 잠시 서울대입구역으로 나가 녹두죽을 사 먹었다. 그리고 7년 전의 경험을 토대로, 장염에는 매실과 된장이 좋다는 것을 기억해내었고, 어머니께 급히 매실 관련된 음료가 없나 여쭤보았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매실 농축액을 얼마간 저장해 놓고 계셨고, 나는 한 500 mL 정도 담아와서 등교할 때부터 지금 이 때까지 조금씩 뜨거운 물에 타서 지속적으로 먹고 있다.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방귀가 편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장염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방귀를 뀌려다가 설사가 같이 터져 나오는 일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7년 전에는 복부에서 가스가 찰 때마다 무조건 화장실에 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게다가 그 때는 고열과 오한으로 정상적인 활동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속은 다 비워진 상태라 방귀의 냄새도 그리 심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대로 식사를 잘 조절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면역력을 잃지 않는다면 다음 주 안에는 회복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잦은 설사로 인해 오랫동안 변기에 앉아 힘을 줘야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장염이 다 낫거든 항문외과에 가서 진찰은 받아봐야 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7년 전에 장염에 걸린 중에는 내과를 두 번 찾아갔지만, 다 낫고 나서는 항문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으나 치열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의사 선생님은 내게 좌욕을 권장하셨다.


슬픈 것은, 내일이 실험실 신년회라서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하게 될 예정인데, 나는 입맛만 다시고 눈으로만 음식을 먹게 될 것 같다. 술은 꿈도 꿀 수 없다. 최대한 여흥을 깨지 않으면서 조절을 잘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이 가장 큰 고비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