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경에 유가가 고공행진을 했을 때, 당시 학부 지도교수님이었던 정두수 교수님은 지도 학생들을 불러모아 고유가 시기에 피크 오일(peak oil)이 큰 화두로 떠오른만큼 이를 대비하고, 우리 학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에 대한 이해와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일을 해 보자는 의견을 내셨다. 책을 번역해보자는 데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었으나 학부 학생들이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당시 배럴당 100달러는 우습게 넘어가던 유가, 그리고 공급의 부족으로 인한 파탄을 그려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거 정말 심각하구나, 석유에서 자유로운 화학을 찾아나서는 일이 시급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2020년 지금, 우리는 거의 십수년만에 사상 최고로 낮은 유가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 서부 텍사스유나 북해 브렌트유, 중동 두바이유 모두 배럴당 20달러대고, 다른 유종 모두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원유 전쟁으로 인해 공급은 늘어나는데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수요는 줄어들고 있으니 가격이 하락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을 배운 10대 학생들도 알만한 상황이다.


유가의 하락은 어마어마한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장 전세계의 석유화학 회사들의 이윤을 대폭 갉아먹는다. 에너지 수요가 떨어지면서 에너지 시장에 투자한 이들 또한 손해가 막심할텐데 가장 큰 우려를 사는 것은 미국의 셰일가스 회사들과 그들에 투자한 금융권이다. 셰일가스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45 달러 이상이 되어야 채산성이 있어 경쟁할 수 있는데, 지금 원유 가격이 그에 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면 가스를 채취해 봐야 엄청난 손해를 떠안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당장 몇몇 회사들은 파산 신청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셰일 에너지 붐을 타고 성장한 미국 남부 지역의 경제 및 그와 긴밀히 연결된 금융권이 연쇄적으로 넘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알다시피 미국 남부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들 기대하는데, 정작 이번에 열린 G20 정상 화상회의에서 원유 생산 및 가격 결정에 대한 이야기는 그닥 기대할 만한 수준으로 진행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론은? 유가의 추가 하락이고, 주식 시장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 짙게 깔리게 되는 것이다.


별무신통이라는 딱 맞다. 요즘은 백약이 무효하여 극약을 써도 잠깐 번뜩할 뿐 그대로 주저앉는 모양새이다. 과연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매진해야겠지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