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에 와서 탄소섬유와 관련된 논문을 처음 써서 제출한 게 작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석사과정생의 실험결과를 정리하여 논문으로 편집하는 데 지도를 해 주었고, 1달 반 정도의 리뷰 과정 끝에 어제 Carbon 저널 편집장으로부터 수정 후 게재 지침을 받았다. 내가 1저자는 아니고, 또 교신 저자인 것도 아니지만 많은 분량의 저술에 큰 기여를 했던 논문이 이처럼 출판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매우 값진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논문의 경우 영어 원어민에게 교정을 의뢰했을 때에도 관사(a, the 문제)나 동사 수나 시제를 제외하고는 내용상 어색하다든지 이해가 어렵다든지 하다는 코멘트가 하나도 없었다. 리뷰어 중 하나도 논문이 잘 쓰여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한다고까지 했으니, 뭔가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논문 주제의 경우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고분자 관련 내용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어민들에게 어느 정도 잘 읽힌다는 인상을 준 것을 보면 확실히 글이 잘 나오긴 한 모양이다.


내가 주저자가 되어 논문을 쓸 때에는 내가 쓰면 그만이지만 실제 실험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정리한 학생을 1저자로 삼아 논문을 쓰면 가끔 이것이 논문지도인지 논문대필인지 헛갈릴 때가 있기도 할 것 같다. 그나마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출중하고 작문에 탁월하다면 지도교수들이 걱정할 필요는 많이 줄겠지만, 아무튼 논문쓰기도 '기술적인 글쓰기' 영역에 속하는만큼,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펜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보며 주로 논문을 읽는 사람들의 성향과 의식의 흐름,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논문을 클릭해서 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선제적으로 공감하게 되면 더 잘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탄소섬유 관련 일을 논문으로 펴낼 때 느껴질 부담감을 한껏 덜 수 있게 된 귀중한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