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있는 동안 노트북을 제대로 충전할 수 없었던 데다가 늘 취침 시간이 (술 때문에) 늦어져서 오늘에야 이렇게 간략하게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2일에 미국 미니애폴리스를 떠난 나는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13일 오전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구름이 잔뜩 낀 파리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이 마치 솜이불 위에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이날 파리에는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껴서 아침 온도가 10도까지 내려가는 그런 추운 날씨였다.


짐을 모두 찾은 뒤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개선문 근처로 가서 성림이를 만났다. 호텔에 가서 짐을 푼 뒤 먼저 근처 중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새 오페라(Opera) 근처까지 가게 된 우리는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 졸음을 떨쳐냈다. 이날 저녁은 성림이 부부와 함께 근처에 있는 동네 맛집에서 먹었는데, 가격은 좀 세긴 했지만 맛이 너무나 끝내줘서 만족스러웠다. 샤를 미셸(Charles Michel)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근방에 있는 술집에서 새벽 1시까지 와인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던지라 둘째날은 퍽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 씻고 나서 무작정 향한 곳은 판테온(Pántheon). 15년 전에 찍은 파리 사진 중에서 내 얼굴이 나온 것이 유일하게 판테온에서 찍은 것이었다. 꼭 이곳에 가서 전신 사진을 다시 한 번 찍고 싶었다. 사진을 찍어준 관광객이 역광은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찍는 바람에 도저히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진이 나오지 못했지만, 아무튼 15년만에 같은 장소를 찾아올 수 있던 것은 축복으로 생각해야겠다.


판테온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길을 죽 내려가 퀴리 부인 박물관(Musée Curie)에 갔고,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파리 대학교의 부속 건물 중 하나인 피에르-질 드 젱(Pierre-Gilles de Gennes) 연구소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명하한 몽주 약국(Pharmacie Monge)에 가서 부탁받은 물건들을 사서 호텔에 들어왔다. 그런 뒤 그냥 시간을 호텔에서 보내기는 아까워서 근처에 있는 에펠탑을 빙 둘러보았다. 세 번째 방문인 파리지만 에펠탑을 가까이서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에펠탑을 구성하는 철골구조는 그냥 단순한 트러스가 아니라 '나름 예술적 감각을 겸비한' 곡선과 직선의 혼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에펠탑에 새겨진 여러 과학자들의 이름을 보며 적어도 21명의 이름을 교과서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날 저녁은 호텔 근처에 있는 동네 밥집에서 와인과 함께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셋째날 아침에는 센(Seine) 강의 하중도(河中島)인 시테(cite) 섬에 자리잡은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에 갔다. 이곳도 예전에 갔던 곳인데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15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성당의 부조과 각종 조각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아는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 관광객 수가 너무 많아서 감히 대성당 내부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조차 못했지만, 수많은 인파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석상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점심은 성림이와 함께 호텔 근처 한식당에서 불고기를 막걸리와 함께 먹었고, 밖에 나가 커피를 한잔 들이키며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날 성림이는 일요일에 있을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분주하게 챙겨야 했는데, 나는 생드니(Saint-Denis) 여행을 포기하고 성림이와 파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의 일을 도왔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촬영을 위해 빌린 차가 수동 기어 변속 기반의 자가용이었다는 것인데, 성림이나 나나 수동 차를 몰아본 것은 거의 12년만에 처음이었다. 결국 파리 시내에서 시동이 꺼지기를 여러 번, 클러치와 가속기, 그리고 기어 변속 방식을 완전히 숙달하기 위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어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요즘은 후진 기어를 넣기 위해서 고리를 당기거나 기어를 잡아 올리는 등의 특수한 조작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고, 나는 으레 그랬듯이 호텔 주변에 있는 또다른 밥집에서 와인과 함께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성림이는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난 밤 11시 30분경에 나를 불렀고, 우리는 자정 넘은 시간까지 근처 술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파리 동역(Gare de l'est)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좀 민망했지만 근처 가판대에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시켜 먹으며 기차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승강장으로 TGV 기차가 들어왔고, 나는 여기에 몸을 싣고 독일 만하임(Mannheim)으로 향했다. 도착한 승강장에는 벤트(Bernd)와 그의 여자친구인 조셀린(Joceline)이 있었고,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하며 만남을 자축했다. 벤트는 마인츠(Mainz)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뒤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포닥을 하다가 독일에 있는 거대 화학 회사 중 하나인 BASF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한지 어느 정도 되었다. 우리는 BASF 본부 근처에 있는 밥집에 갔고, 거기서 우리는 갓 나온 와인 ― 노이 바인(Neu Wein) ― 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맛보는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는 참 짭짤하니 맛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근처 지역에서 한나(Hannah)와 케르스틴(Kerstin)이 우리를 찾아왔다. 둘 다 마인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친구들인데 한나는 이제 둘째를 가져 배가 잔뜩 부른 상태였다. 각자 어디서 일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취직의 우여곡절은 어떠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대부분 마인츠 대학 출신 친구들이 독일 남서부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하자 대부분의 화학, 화학공학 회사들이 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라며 다른 이들의 취직 상황들도 소상히 얘기해줬는데, 아니나다를까 다들 이 동네 근처였다 ― 예를 들면 다름슈타트(Darmstadt)라던가 카를스루에(Karlsruhe)라든가… 우리는 만하임의 오래된 급수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풀밭에 앉아 더 이야기하다가 저녁 6시쯤이 되어 헤어졌다. 벤트와 조셀린, 그리고 벤트의 룸메이트와 함께 근처 스시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는 숙소로 돌아가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에는 벤트, 조셀린과 함께 만하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슈파이어(Speyer)에 가서 슈파이어 대성당과 구 도심을 둘러보았다. 돌아다니는 중에 옷가게에 들러 바에이른(Bayern) 지방의 전통 남성 복식이라는 가죽바지(레더호젠, lederhosen)를 입어보기도 했다. 동생이 사달라고 부탁한 아동용 벨레다(Weleda) 화장품을 전부 구매하고서, 우리는 벤트의 고향인 란다우(Landau)로 향했다. 란다우의 한 그리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정말 경악스러웠지만 아니스, 와인과 함께 곁들여 먹으니 참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구도심을 한바퀴 돈 뒤 벤트의 집에 갔는데, 7년 전에 한국에 방문하신 적이 있는 벤트 어머니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집 뒤뜰 테이블에 앉아 벤트 어머니가 만드신 케익과 더불어 와인을 줄창 마셨고, 아예 거기서 저녁까지 해결했다. 중간에 벤트 아버지도 오셨는데, 내가 미네소타 대학에서 포닥을 할 적에 미니애폴리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미리 알았으면 만나뵙고 인사드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백포도주를 계속 들이키며 빵, 프레첼, 치즈, 그리고 플람쿠헨(Flammkuchen)을 먹었다. 권하시는 와인을 계속 마시며 이 주제 저 주제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은 벌써 밤 8시 반. 벤트는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우리는 이쯤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치기로 했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또 만날 날을 기대하겠다며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화요일 아침 일찍 만하임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마인츠로 향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인츠에서 마인츠 대학 출신 친구들을 여럿 보는 것이었는데, 다들 취직 관련된 일로 일정이 잡혀서 만날 수는 없었고 다만 전날 한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베네딕트(Benedikt)를 볼 수 있었다. 우선 짐을 마인츠 중앙역 보관소에 집어넣고 우리는 마인츠 대성당 근처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나는 맥주와 함께 슈니첼(Schnittzel)을, 베네딕트는 캐저스패츨(Käsespätzle)을 먹었다. 베네딕트는 이제 박사과정 3년차인데 의약화학과 관련된 합성을 진행하면서 박사 졸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난 주에 베네딕트는 서울과 속초를 여행했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죽 하면서 그래도 한국에 머물렀던 경험 덕분에 한국에 여행하러 가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단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인 게 독일이 이번이 다섯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독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낯섬같은 게 전혀 없다. 물론 독일어는 잘 못하지만 이 사람들은 영어도 훌륭하게 잘 하므로 걱정거리가 없고… 우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뜬다는 아이스크림 집 ― 이름도 무려 나이스(N'Eis) ― 에서 특이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라인 강변을 따라 걸었고, 커피를 한 잔 한 뒤 헤어졌다.


마인츠 중앙역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이번에는 뒤셀도르프(Düsseldorf)로 향했다. 한국인들에게 관광지로서는 뒤셀도르프보다 옆동네인 쾰른(Köln)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뒤셀도르프에 소재한 막스 플랑크 철 연구소 (Max Planck Institut für Eisenforschung)서 포닥으로 일하고 있는 화학부 동기인 임주현 박사를 만나기 위해 이번 일정에 뒤셀도르프를 포함시켰다. 주현이를 만나기 전에 잠깐 시간이 되어 뒤셀도르프의 도심과 라인 강변을 걸어다녔는데 생각보다 멋져서 깜짝 놀랐다. 특히 신도심에 잘 조성된 명품 쇼핑 거리를 보고 멋지다는 생각이 딱 들었고, 구도심의 아기자기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라인 강변에 줄지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석양을 즐기는 뒤셀도르프 시민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에 독어 수업이 끝나고 나온 주현이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우리는 구도심으로 가서 학세(Haxe)와 함께 이 동네 특산 맥주라는 알트비어(Altbier)를 연거푸 들이켰다. 저녁 뒤에는 구도심에 있는 양조장에 가서 거기서 제공하는 알트비어를 계속 마셨다. 이곳으로 포닥을 오게 된 여정, 포닥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주변 다른 사람들 소식 이야기… 이것저것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훌쩍 지나갔다. 사실 주현이와 내가 학부 및 대학원 기간 동안 많이 연락하고 대화하며 지내온 것은 아니지만, 같은 곳에서 학사와 박사학위 과정을 했다는 점과 지금까지도 연구의 길을 같이 걷는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동질감을 강하게 느낄 동료임에는 틀림없다. 주현이는 일단 교원으로의 길을 걷고자 시도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서로 앞으로의 건승을 기원하며 1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작별을 고했다.


다음날 여유롭게 일어난 나는 뒤셀도르프에 있는 개신교 교회인 요하네스 교회 (Johanneskirche)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잘 조성된 공원인 호프가르텐(Hofgarten)을 거닐며 다시 한번 이 도시가 정말 살기 좋은 괜찮은 도시라는 것을 깨달았고, 근처를 걸어다니는 아저씨들의 옷차림에서 질질 넘쳐나는 그 멋스러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독일 패션 중심도시답군! 결국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의 남성의류 매장에 들러 정장에 함께 입을 만한 (좀 화려한) 양말을 사고 그것도 모자라다 생각해서 보타이와 서스펜더 등을 한 세트 샀.. 아니 질렀다. 숙소로 가는 길에 뒤셀도르프에 있는 여러 한국 음식점 중 하나인 비빔컵(Bibimcup)이라는 데를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뒤셀도르프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도착하였고, 현재 공항 안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게 지난 1주 유럽 여행, 아니 친구 만나기 일정의 전부였다. 어떤 이들은 유럽을 떠나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유럽의 다른 동네에서 일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친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간다는 것, 그러므로 언젠가는 우린 다시 또 만날 것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 북미 투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유럽 투어(?)인 셈인데,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전세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자신들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았다. 나도 이들에게 부끄러운 친구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지. 내가 좋아하는 연구에 전념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이루고 또 그것을 통해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여기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영구히 귀국한다. 당분간은 안양에 머물면서 가족, 친지, 친구들을 만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겠지만, 아무튼 이전까지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이 곧 펼쳐지게 될 것이다. 기대와 걱정, 그러나 도전을 한껏 품은 채 곧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이다. 아, 모든 일들이 부디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