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네소타 대학의 Rarig Center라는 건물에 있는 Stoll Thrust 라는 소극장에서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보았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극장을 향하는 길은 전날 내린 눈으로 아득하게 뒤덮여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아서 도로가 꽝꽝 얼어버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눈이 6인치(~15 cm) 이상 내린지라 신발이 눈더미 속으로 푹푹 빠지는 것만큼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Rarig Center. 극장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이미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미네소타 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에 전문 연기자들의 공연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었다. 일반인 티켓 가격은 $17, 나와 같은 미네소타 대학 스텝은 $12, 그리고 학생들은 나이에 관계 없이 무조건 $7. 이러니 사람들로 북적일 수밖에.


그런데 연극이 시작되기 한 3분 전부터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어로 감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뮤지컬이야 자막 없는 영어로 감상한 적이 꽤나 많았지만 이것은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지 않은가. 게다가 셰익스피어는 수백년 전 사람이니 현대극에서나 쓰일만한 그런 구어체(口語體) 역시 아닐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로서는 (고작 살아남기에 급급한 영어 실력으로) 이를 무슨 수로 이해한단 말인가.


다급해진 나는 핸드폰을 꺼내 연극의 줄거리를 단기간 내에 학습했는데, 다행히도 '한여름밤의 꿈'의 구성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이었기에 극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극중극(劇中劇)이 무대 위에 상연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옆 관객들과 함께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웃어댔다. 그렇다고 이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배우들의 대사는 한 20% 정도만 순수하게 제대로 알아들은 듯 싶다. 40%는 대사가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정황상 추론하여 이해한 정도랄까? 나머지 40%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더라. thee 나 thine 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되는 것으로 봐서는 대사를 아주 현대적인 말씨로 완전히 수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나마 이게 좀 위안이 될까나? 글쎄, 외국인이 국립극장에 와서 춘향전 판소리를 들으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나? (물론 한국인조차 알길이 없는 한자어 표현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서울대에 있을 때에도 이런저런 공연과 이벤트들이 참 많았는데, 정작 모국어로 실컷 즐길 수 있는 기회들은 날려버린 채 미국에 나온 뒤에야 비로소 이런 것들을 찾아 즐기고 있으니 원. 내 학부생 시절로 돌아가거든 이런 것들을 모조리 다 챙겨보리라... 라고 하더라도 그 때에는 돈도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겠지...


'한겨울낮의 영어듣기평가'같은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즐거운 연극 관람이었다. 다음달에는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희극인 십이야(十二夜, The Twelfth Night)를 무대에 올린다는데 나름 자신감도 생겼겠다 기회가 되거든 한번 봐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