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야기를 남기지 않은지 열흘이 넘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지난 열흘 정도의 시간이 비슷비슷한 하루들의 반복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특별했던 날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새로 데뷔한 혼성 아이돌 그룹 KARD가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State Theater에서 미주 투어 공연하는 것을 보러 간 것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그저 일상적인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최근에는 X선 산란법과 핵자기공명분광법(NMR)과 씨름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다. 특히 교수님이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PS-PMMA 박막 샘플의 GISAXS를 찍어봐야 하는데 그냥 GISAXS가 아니라 온도가 제어되는 스테이지 위에서 찍어야 한다고 했다. 배운 적이 없는 것을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다니! 부랴부랴 샘플 준비하고 새로운 스테이지 제어를 익히고 최종적으로 AFM과 함께 GISAXS 데이터를 보내드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 도중에 여러가지 난관들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엄청 많았는데, 어쨌든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다행이다. NMR의 경우 교수님이 정량적인 탄소 NMR 분석을 제안하셔서 벌어진 사단(?)인데, 통상적인 NMR 분석으로는 탄소 신호의 정량적 분석이 불가능하지만 특별한 모드에서 오랫동안 신호를 얻으면 가능하다. 문제는 이 모드를 지원하는 기기는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그 교육을 받기 전에 퀴즈를 풀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퀴즈가 웬만한 NMR 이론 내용을 리뷰해야 풀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7년 전에 들었던 NMR 수업 교재를 오랜만에 꺼내들고 내용을 찾아보는데, 당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고생했던' 수업 시간이 떠올라 한동안 패닉 상태였다. 꾸역꾸역 퀴즈 문제를 모두 다 풀고 내일 아침에 제출하려고 하는데, 글쎄 내가 NM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신호만 얻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잠깐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오늘 자기 전에 NMR 교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원래 콩기름 실험이 거의 완료되어 논문 작성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자꾸 일정이 늦춰지고 또 교수님은 계속 섬유 뽑는 것의 개선을 요구하시니 심란함이 요즘 가시질 않는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짧은데,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 사실 박사과정 때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면 뭔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는 이 곳에서 더 이상 팔팔하지 않은 30대의 몸을 이끌고 그렇게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요즘 포닥을 하는 것의 의의는 무슨 화려한 논문을 쓰고 인맥을 만들고 뭐 이런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곳에서 전혀 새로운 주제로 전혀 새로운 연구자의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해나갈 수 있는가'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