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진행이 다시한 번 답보 상태에 이르른 것과 동시에 굉장히 역동적인 한 주를 보냈다 ― 그 탓에 무려 아흐레동안 이 곳에 글조차 남기지 못했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실험실에 새로 들어온 타원계측기(楕圓計測器, ellipsometer) 설치 및 교육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이곳 미네소타 대학 기기원에 이미 설치 되어있는 기계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J. A. Woollam 회사의 기기인데, 필름 두께 측정 시간이 굉장히 단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전보다 굉장히 좋아져서 빠른 시간 안에 어렵지 않게 두께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타원계측기는 공용 기기가 아닌 실험실 소유 기기이기 때문에 어느 때고 원하는 시간에 쉽게 내 샘플의 두께를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설치를 진행하러 네브라스카에서 온 엔지니어는 기기를 설치하고 시연할 때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 실험실 미국 학부생은 그건 전형적인 네브라스카 사람의 특징이라고 했다. ―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목요일에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연락이 닿게 된 다른 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막 미니애폴리스 생활을 시작하신 박사님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간 홈페이지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방문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이렇게 미국으로 나오는 시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사의(射儀)를 표하는 분을 직접 대면할 날이 (그것도 미국에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포닥으로 미국으로 오기 전 서울대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을 때 이 박사님은 우리 연구실 바로 아래층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우리 둘 다 서울대 화학부에서 '재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람의 연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종종 만나면서 도움을 더 주고받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금요일에는 실험실 사람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고 같이 보드게임 'History of the World'를 즐겼다. 원래 예전부터 우리 집에서 실험실 파티를 하자고 실험실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번 이야기가 오갔는데 아무도 제대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이에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시간을 정해서 단체 메일을 돌렸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이 모임은 1시간 반 가량의 점심 시간 + 4시간 가량의 보드게임 시간으로 이어저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는데, 모두들 대접받은 음식을 맛있게 즐겨 주었고 게임도 재미있게 즐겨 주어서 내가 다 고마웠다.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맛있는 음식으로 더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헤어졌다.


토요일에는 아침과 이른 저녁에 실험을 하고 바로 옆 도시인 세인트폴(St. Paul)로 건너가서 트윈 시티 재즈 페스티벌 공연을 보러 갔다. 세인트폴 시내가 음악으로 아주 들썩였는데 메인 야외 공연장 중 하나인 Mears Park는 이미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날씨가 6월답지않게 굉장히 추웠는지라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속옷에 긴팔, 그리고 블레이저까지 입고 나가는 대비를 한 덕분에 심각하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피잣집에서도 기타리스트의 개인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고 과연 재즈 페스티벌이 특정한 공연장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시내 각 곳에서 '무차별적,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8시 반이 가까워지자 Mears Park에는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입추(立錐)의 여지조차 없었다. 재즈 페스티벌 기획팀과 세인트폴 시장의 환영사에 이어 등장한 세션. 현란한 색소포니스트의 연주도 인상적이었고 베이시스트의 워킹과 저음부의 풍성한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공원에 모인 모든 관객들은 이날 밤 공연의 꽃이었던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모두들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78세의 고령으로 명인(名人)의 반열에 오른 맥코이 타이너는 거동이 힘들어 보였으나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그의 손과 발은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특히 왼손의 타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색소포니스트의 현란한 스케일에 '나도 지지 않아!'라고 쩌렁쩌렁 외쳐대는 것 같았다. 맥코이 타이너는 내가 가진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명반(名盤)인 'A Love Supreme'에서 피아노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정작 그가 리더가 되어 녹음한 음반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만간 아마존에서 그의 앨범을 한 두개 사서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에는 미니애폴리스 시내에 성소수자 거리 행진(프라이드)을 보고 Loring Park에서는 수백개의 부스가 마련된 페스티벌을 둘러 보았다. 미니애폴리스의 프라이드를 보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헤네핀 대로(Hennepin Avenue)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무지개 깃발과 다양한 장식을 한 거리 행진 참석자들을 향해 박수와 환호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네소타 주지사(州知事)로부터 평범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기독교인과 무슬림, 불자들과 무신론자들까지, 또한 군인과 경찰로부터 성매매업 종사자와 반려견 동호회 회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 행진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성소수자들만이 거리 행진에 나서는 것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로서 '우리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지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성소수자 페스티벌이 있을 때마다 항상 논란이 되는 노출의 경우, 이곳 거리 행진에서는 (미국이라는 개방적인 사회에 관한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거리 행진 규모에 비하면 노출의 빈도와 수위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미니애폴리스 프라이드에만 국한된 내용이기 때문에 한국의 퍼레이드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쩌면 이 것은 미국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노출'을 선택할 정도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미친 듯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열린 사회에 이미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Loring Park에 모여있던 수천명의 시민들은 다채로운 행사장에서 자신들의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었고, 손을 잡고 걷는 동성 커플들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내게 큰 화두를 던져 준 주제인 '다양성(diversity)'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최근 재개장한 미니애폴리스 조각 정원(Minneapolis Sculpture Garden)에 가서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Spoonbridge and Cherry 앞에 가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쓴 다음에 빨래를 말려두고 학교에 가서 실험을 할 것이다. 정말 알차게 보낸 한 주, 그리고 정점을 찍은 주말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