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우레탄 실험과 함께 병행하는 두 번째 실험인 콩기름을 이용한 실험도 진행이 잘 된 덕분에 싸이올기(thiol group, -SH) 기능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던 지난 10월 말 이후, 나는 지난 열흘간 거의 대량 합성을 위한 스케일업(scale-up)에만 집중했는데, 몇 번의 삽질(?)과 실패가 있었지만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해서 수 g 의 단량체를 한 번에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참 기묘한 것이 수 g 을 얻기 위해 큰 규모로 실험하면 분명히 수십 mg 을 얻기 위해 작은 규모로 실험할 때와 동일한 화학 반응과 실험 과정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예상치 못했던 상황, 곧 소규모 실험에서는 간과했던 문제들이 여기 저기서 펑펑 터진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자잘한 실험 기술과 관련된 것들이지만, 다루는 물질의 양이 10배 늘어나면 그에 따라 기울여야 하는 주의는 10배가 아니라 100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기간동안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바로 워크업(work-up) 과정 중 분별 깔때기(separatory funnel)를 이용한 추출(extraction)이었는데 칵테일 만들 듯 열심히 깔때기를 흔들어대면 그 안에 에멀젼(emulsion)이 너무 많이 생겨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에 어려운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었다. 벌써 이 문제로 아까운 결과물을 두 번이나 날려 먹었다 ― 덤으로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써야 했던 이틀 더하기 이틀의 시간도... 그래도 기민한 구글 검색 실력과 미천한 유기 화학 지식을 짜내고 짜낸 끝에 물과 분리되는 유기 용매를 바꾸면 에멀젼화가 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고, 비록 오늘 염산(hydrochloric acid)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덕분에 세 번째 결과물 마저 날려먹었으나 이제는 온전히 최종 결과물을 대량으로 얻기 위한 모든 실험 과정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실험실에 나갈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실험을 시작한 9월 말부터 단량체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그 단계가 서서히 마무리되던 지난달 중순부터는 폴리우레탄 중합에 도전하였다. 첨가 중합은 쉬운 거라고 생각해서 큰 걱정 없이 과감하게 도전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점성이 있는 액체 폴리우레탄 프리폴리머를 만드는 데 계속 실패해서 엄청나게 애를 먹었고 이 실험을 접어야하나 고민도 많었다. 처음에는 반응물 중에서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 물 분자 때문에 이런 재앙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각 반응물들을 진공 오븐에서 가열하며 말려보고, 심지어 톨루엔을 섞어 공비증류(azeotropic distillation)까지 해봤는데 전혀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쓰디 쓴 좌절을 맛보며 여러 논문들을 참조해봤는데 애초에 계획된 반응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 주문한 폴리올(polyol)을 오늘 받아 일단 오븐에서 건조부터 시켰다. 내일 학교에 일찍 가면 중합 반응을 조금 세심하게 진행해서 기어이 폴리우레탄 프리폴리머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오늘 연구실에 갑자기 들어 온 Ellison 교수님이 잠깐 얘기하길 박사후연구원들은 논문들을 많이 생산해야 하므로 성수도 다른 연구 주제에 투입이 되어서 '낮은 곳에 열린 열매'를 쉽게 딸 수 있어야 하겠다고 했다. 그말인즉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완전히 새로운 주제 외에 좀 더 친숙한 연구 주제에도 관여하여 비교적 쉽게 쓸 수 있는 논문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생각엔 박사과정 때 했던 블록공중합체 박막과 그래핀 관련 연구가 그 '다른 연구 주제'가 되리라 짐작하고 있으나, 나를 두 명으로 쪼개서 각자 일하게 하지 않는 이상 그 다른 주제에도 손을 뻗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다만 해당 분야를 전담하는 박사과정생이 들어오게 되면 내가 중간에서 지도하면서 함께 연구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11월부터 우리 실험실에 배정되는 대학원생이 오늘 잠정 확정되었는데 최소 3명의 박사과정이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관련 연구 주제를 전담하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협력해서 좋은 성과를 서로 나눌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