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미니애폴리스에서 내가 섬기고 있는 성공회 교회인 Gethsemane Episcopal Church 에서 Worship & Music Committee (예배 및 찬송 위원회) 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주일 감사성찬례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 ― 주보(週報) 편집, 기도문 및 예배 순서 ― 을 정리하고, 교회력에 따라 반복되는 일정 및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교회에 모여서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의 시간은 예배 및 찬송과 관련된 논의로 채워지지만 가끔은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곤 하는데, 지난 달 위원회 모임 때 오늘, 곧 11월 26일 주일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오늘은 교회력(敎會曆)에 따르면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Christ the King Sunday)'으로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절기이다. 이날은 한국에서는 연중, 미국에서는 오순절(Pentecost)이라고 불리는 교회력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절기인 대림절(Advent)이 시작된다. 지난달 위원회 모임 때 교회력이 바뀌는 시기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갑자기 위원회 회원 중 한 분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왕이신 그리스도... 난 왕이란 말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안 그래요?"


생각해보니 거기 모인 사람들 중 군주정(君主政) 국가 출신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게다가 한국은 117년전만 해도 황제가 존재하는 나라였고 이후 망국(亡國)의 이왕(李王)으로 격하되긴 했어도 얼마간 엄연히 왕이라는 존재가 있었던 땅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단 한번도 왕이나 황제가 다스린 적이 없었던 나라 아니던가!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이 오가다가 신부님이 이런 이야기도 하셨다.


"... 그래서 여기도 그렇고 몇몇 교회에서는 King 이나 kingdom 이란 말을 안 쓰고 Reign 이라든지 하는 다른 단어를 쓰곤 하죠. 영국 사람들은 왕에 대해 별로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긴 군주정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 특별한 일요일의 이름이 다시 지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칭호가 붙어야하지 않을까? 일단 대통령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President)가 먼저 나왔고, 그 다음은 주지사(州知事)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Governor)가 나왔다. 나는 총리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Prime Minister)는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물론 속으로는 만일 대한민국이었다면 '비선실세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Biseonsilse)', 북한이었다면 '최고존엄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Supreme Dignity)'가 되지 않을까 되뇌었지만...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농담을 주고받다보니 이게 생각보다 꽤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왕이신 그리스도란 말인가? 그것은 왕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권세와 영광을 비유하기 위해 이 명칭을 끌어다 쓴 것이다. 유대인들의 정치 체제는 사울 시기에 이르러 12지파로 대변되는 부족 연맹체에서 왕정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은 유대인들의 역사관 및 세계관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다. 또한 예수 그리도의 강생(降生)을 예언한 선지자들은 왕정 성립 이후에 활동하기 시작했으므로 훗날 도래할 메시아의 권위를 왕에 빗대어 표현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따라서 성서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그리스도의 직분은 선지자직, 제사장직 외에 왕의 직분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팔레스타인 지방에 왕정이 들어서지 않고 영원히 사사(士師) 혹인 판관(判官)들이 통치했다면? 그렇다면 성서에서 묘사되는 그리스도의 직분은 왕직이 아니라 판관직이었을 것이다. 만약 팔레스타인 지방에 초대 로마 시기와 같은 공화정(共和政)이 자리잡았다면? 그렇다면 성서에서 묘사되는 그리스도의 직분은 왕직이 아니라 집정관(執政官)직이었을 것이다. 만약 팔레스타인 지방에 공산당이 들어섰다면? 그렇다면 성서에서 묘사되는 그리스도의 직분은 왕직이 아니라 공산당 서기직 동무였을 것이다. 따라서 왕이신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가지는 그 위엄은 우리의 선조들이 '왕정(王政)'을 거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왕이 드물어진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학습을 통해 '왕'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권력을 익히 들어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왕정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왕이신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굉장히 낯선, 혹은 무의미한 이름이 되고 만다. "왕이 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학적 사고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 및 통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신학의 요체가 순수 무형의 어떠한 형이상학 존재로서 감각되는 것이 아닐 바에야 이것은 구체적인 어휘들의 조합으로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어휘는 인간의 사고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화의 경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