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하드 디스크로 옮긴 과거 및 현재의 사진들을 죽 훑어보니 발견한 경향이 하나 있다. 바로 셀카. 예전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해가 갈수록 셀카를 거의 찍지 않는다.


내 셀카 역사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부상으로 받았던 SKY 슬라이드 핸드폰은 당시 외장 카메라 기반이었고 나는 따로 돈이 드는 액세서리를 따로 구매하지 않았다. 그 덕에 친구들이 내장 카메라 핸드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댈 시절, 나는 그 대신 (역시 부상으로 받았던) hp 디지털 카메라로 최초의 셀카를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디지털 카메라라고 부르기에도 참 민망했던 거대한 고물이었지만 ― 그 이후 10여년간 배터리, 화소, 메모리 등 모든 부문에서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다.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뽑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진을 한 열 번은 찍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뒤로 돌려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진을 확인하고, 삭제하고, 다시 찍고, 확인하고, 삭제하고...


셀카 찍는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마침 내장형 카메라 기반의 핸드폰을 새로 사서 셀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구축된 점도 한 몫 했다. 핸드폰 배경 화면,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 사진, 간간히 올리는 사진첩 사진에는 빠짐 없이 셀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맛에 중학생 시절 친구들이 캠을 이용해서 엄청 사진을 뽑아냈던 거구나 경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셀카를 찍는 횟수는 학부 때 정점을 찍었다가 대학원 생활을 거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박사 후반부에 들어서는 현재 상황 알림을 위한 셀카나 셀카를 찍어야만 하는, 혹은 셀카를 찍는 것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프로필이나 대문 사진을 위해서는 절대로 셀카를 찍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셀카를 안 찍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운동하는 동안 가만히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두 가지 정도로 그 이유를 압축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셀카로 찍힌 내 모습이 남들이 보는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를 뿐더러 나 스스로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셀카의 특성상 내 모습은 '내가 바라는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 낯짝(?)은 평소의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상당히 거리가 멀다. 가령 나는 그렇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살아가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난 그렇게 생겨먹질 않았다. 그 어색함을 '잘 나왔다!'라는 찬탄으로 가리기엔 민망함이 너무 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남들은 얼마나 더 이상하게 내 셀카를 지켜봤을까!


그러나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내 외양에 대한 자기긍정이 커졌다는 것이다.


나는 못생겼다는 말을 잘생겼다는 말보다 곱절의 제곱 정도는 들으며 살았다. 그랬던 내게 아까 말한 그 '매직 스트레이트 펌'은 상당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2006년 1월 4일 ― 얼마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날이었으면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 그날 이후! 예전같으면 별로 상대하지 않아 주었을 것 같은 선후배들이라든지 모르는 사람들이 좀 더 친절하게, 혹은 비호감을 걷어내고 나를 상대한다는 느낌을 아주 명확하게 받았다. 학부 1학년 때에는 동아리에서 아무도 날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펌을 하고 나타난 2학년 때에는 선배가 술도 사주고 자주 만나자고 얘기할 정도였다. (물론 염증을 느낀 나는 다시는 그 동아리를 찾아가지 않았다.) 학부 선배들의 태도도 그랬고, 처음 만나뵙는 어르신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들도 그런 느낌을 받게 해 주었다.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다가 주변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자 내 외양에 대한 자신감 혹은 긍정이 갑자기 폭증해 버린 게 셀카 횟수 급증의 원인이었다. 더 멋지고 이쁘게 찍히는 것이 지상 과제였고, 그것을 업로드한 뒤 받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더 나은 셀카를 찍는 원동력이 되는 순환이 반복되었다. 실상은 그것이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연민 혹은 학대나 다름 없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사실은 공허하리만큼 없었기 때문에 그런 주변의 바람에 거품만 잔뜩 일어 열심히 찰칵찰칵 폰카를 눌러댔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셀카의 순환 고리가 끊어지게 될 때쯤 나는 그것을 깨달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은 내가 바꿀 수 없다. 만일 바꾸려고 한다면, 혹은 그것을 꾸며서 멋지게 보이려고 얕은 수 ― 포토샵이라던지, 사기 셀카라던지 ― 를 쓴다면 이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내 생겨먹은 것에 대해 아직도 분노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내 모습에 긍정한다면 셀카라는 허위의 의식을 통해 굳이 나를 좋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내 사진첩에는 남들이 찍어 준 사진이 더 많아졌고, 그와 더불어 내 외양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뭐, 이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쩌라고.'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세상에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천지에 깔렸다는 것을 SNS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나같은 놈이 술수를 쓴다고 해서 뭐 도토리 키 1mm 늘어나는 수준이겠는데 뭣하러 그런 피곤한 짓을 하나.


내가 스스로 꾸며 만든 내 얼굴, 거기에는 내가 인식하는 이상적인 내 모습이 서려 있다. 그 이상에 100 % 가까이 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촬영하고, 확인하고, 삭제하고, 촬영하고, 확인하고, 삭제하고... 그런데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 현실은 내가 거울이나 뷰파인더를 통해 본 내 모습이 아니라 남들의 안구를 통해 바라 본 내 모습이다. 고로 셀카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현실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이상적인 외모를 더 이상 희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해가 지나면서 경험한 '이젠 더는 안 돼.'와 같은 자포자기 느낌도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 어때서.'와 같은 진짜배기 자기긍정도 함께 녹아들어가 있다. 어떻게 보면 건강하지 않은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끔 서로 다른 감정이 골고루 섞여 있다는 사실이.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