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에서 보내는 주일이다. 나는 그동안 이번에 미국에 가게 되거든 반드시 미국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노라 벼르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서로 다른 분파의 교회의 전례를 참석하는 것이 내게 유익하고 또 교회의 일치를 위해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부터는 그 어느 나라보다 종교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ㅡ 이건 내가 고안한 불경스런 단어가 아니고 예전에 미국의 종교성을 논하는 다큐멘터리에서 표현한 말이다. ㅡ 미국의 교회에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늘 했었다.
 
오늘 방문한 두 곳은 모두 작년에 먼저 견학차 갔던 곳이다. 처음으로 간 곳은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로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in USA)이고,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올드 사우스 교회(Old South Church)로 미국 그리스도 연합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in USA, UCC)이다. 전자는 우리나라의 성공회(Anglican Church of Korea(와 영국 교회(Church of England)와 상통하고 있는 교회고, 후자는 회중 교회(Congregational Church)의 후신 격인데, 우리 나라에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회중 교회가 사라지고 다만 침례교에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할 수 있다.
 
트리니티 교회의 감사 성찬례(Holy Eucharist)는 아침 9시부터 진행되었다. 보스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성공회 성당이기도 한 이 교회는 코플리(Copley) 광장 근처에 있어 접근성도 좋았다. 자리에 잡아 주보를 받아 들고 좌석 앞에 성공회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와 찬송가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례 시간이 가까워오자 플룻 연주가 전주(Prelude)로 시작되었으며 곧 성가대가 교회 입구에서부터 입당송(Introit)을 부르고 십자가와 촛대를 들고 들어왔다. 부제와 사제들이 그 뒤를 따라서 들어왔는데 ㅡ 이것이 한국의 개신교와는 다르다. 한국의 개신교는 장유유서에 따라 목사가 먼저 앞서고 부교역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데, 교회 전통에서는 양을 치는 목자는 항상 양들이 지나간 뒤에 서서 따라 가는지라 부제, 사제, 주교 순으로 행렬의 뒤에서 걸어들어간다. ㅡ 드디어 전례가 시작되는구나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찬송가를 부르고, 사제의 예배 시작 선언이 있은 뒤에 또 찬송을 하고, 사제의 기도가 있었다. 자리에 앉은 뒤에 1독서 ㅡ 민수기였다. ㅡ 가 진행되었고, 시편을 음률에 따라 찬양하듯이 읽은 뒤 찬송을 또 했고, 이윽고 모두 자리에 일어나서 2독서 ㅡ 마태복음서였다. ㅡ 가 진행되었다. 사제의 설교가 강단에서 진행되었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총기 사건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 사제는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움이라는 인간 감정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신앙의 의미를 역설하였다.
 
설교가 끝난 뒤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을 모두가 일어나서 읊었으며 ㅡ 최근 가톨릭 교회에서도 사도 신경(Apostolic Creed) 말고 니케아 신경을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ㅡ 기도를 인도하는 어떤 여성분이 나아와 다양한 주제의 기도를 진행했는데, 그 중에 별세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도 중간에는 일일이 호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는데, 그 때 회중 중에 몇몇은 기도할 대상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죄를 사해주시길 비는 기도에 나아가서는 몇몇 사람들은 자리 앞에 준비된 쿠션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하였다.그리고 이 모든 말씀 전례의 마지막은 회중들이 서로 평화를 기원하며 악수하고 인사하는 시간으로 끝났다. 으뜸 사제가 나아서 광고를 진행하였는데 꽤나 유쾌하게 말을 전해 주셨다.
 
이 전례는 성찬례(Holy Communion)에서 절정에 달했다. 성공회의 경우 세례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성찬례에 참여해도 좋다는 신학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부담을 가지지 않고 나갔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공회의 성찬례는 사제에게서 받은 빵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임에 비해 여기서는 실제로 입에 잔을 가져다 준다 ㅡ 설마 내가 그 사인을 잘못 알아듣고 마셔댄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사제나 부제가 내게 지침을 전해줬을 거야. 거기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 성찬례를 나눈 아시아인은 나 하나뿐인 듯 했다. 중간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주기도문을 찬양으로 불렀다. 사제는 성찬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우리 모두 O come, O come, Emmanuel을 찬양했다. 그리고 성가대가 성당 입구로 빠져나가고 폐회송이 불림으로서 모든 전례까 끝났다. 전례가 끝난 뒤 오르간 주자가 후주(Postlude)를 연주하는데 무슨 콘서트에 온 줄 알았다. 전체적으로 오르간 연주자의 역량이 감사 성찬례 내내 중요하게 느껴졌다.

 

한편 올드 사우스 교회의 예배는 조금 달랐다. 우리 나라에는 회중 교회가 남아 있지 않아서 직접적인 비교가 쉽지 않지만, 회중 교회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상당히 진보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진 단체이다. (당장 내 옆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 두 사람이 레즈비언 커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성찬례를 집전하는 목사가 여자였다는 점, 그리고 예배 내내 한쪽에서는 수화로 모든 예배의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11시에 시작된 예배는 축제 예배(Festival Worship)라는 이름이 붙은 예배였다. 역시 플룻 연주자의 전주가 있었고 ㅡ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봤던 음률이다 싶었는데 바로 O come, O come, Emmanuel 이었다.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는 마치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는 것 같은 현대적인 느낌이었고 트리니티 교회에서의 연주와는 사뭇 달랐다. ㅡ 이윽고 성가대가 뒤에서부터 입당송을 부르며 들어왔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것이 지휘를 하는 사람이 무슨 북을 들고 와서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린 아이와 중년의 신사가 나와 기도문을 읽고 촛불에 불을 붙였다.

 

평화를 서로에게 전하는 인사를 보다 일찍 진행하였고, 신경을 읊는 시간은 없었다. 성경말씀은 똑같이 마태복음서의 내용이었는데 왠지 성서정과에 따라 다들 진행한 게 아닌가 싶다. 민수기 내용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한 트리니티 교회의 설교와는 달리 올드 사우스 교회의 목사는 마태복음서의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진행했다. 상당히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설교였고 설교 초반에는 Holly, Jolly, Apocalypse 라고 개사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셨다. 그는 마태복음서의 내용이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마치 믿는 사람들은 우주선에 실어서 딴 세상으로 보내고 안 믿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 멸절시키는 무슨 마술같은 종말 예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일상에 삶에 예수님께서 늘 항상 새롭게 함께 하심을 다시 알게 하는 것이라면서 예수님의 재림은 두 번째 오심이 아니라 어쩌면 세 번째, 네 번째, 혹은 쉰 번째 오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기도가 진행되고 주기도문은 역시 같은 음률에 맞춰 노래로 진행되었는데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가 추가된 것이 다른 점이었다. 여기서도 사람의 이름이 하나씩 다 불려가면서 진행되는 기도 순서가 있었다. 그리고 헌금을 내는 순서가 따로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개신교 대부분이 주머니에다가 헌금을 넣는 방식을 채택하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쟁반에다가 돈을 올려놓는 식이었다.

 

전례의 후반은 역시 성만찬이 있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빵은 서방 전례에서 사용되는 웨이퍼, 곧 얇은 전병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빵이었다. 장로교의 경우 장로들이 이 빵을 가져다가 각 사람 앞에 가져다주면 사람들이 받아서 먹는데, 회중 교회에는 장로라는 직책이 없이 모두가 다 같은 회중이니 섬기기로 택함 받은 봉사자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다 나아와 각 사람들이 빵 한 조각씩 가지게끔 쟁반을 돌렸다. 재미있게도 이 교회에서는 예배에 참석하는 모두가 빵을 받게 되고나서야 목사가 앞에서 함께 나누자고 말을 하고, 그제서야 개개인이 비로소 빵을 먹는다. 반면에 포도주의 경우 봉사자들이 건넨 쟁반에서 꺼내 받아들자마자 마신다. 목사는 빵을 동시에 함께 먹는 것은 교회 안에서 연합합을 상징하고, 포도주를 개개인이 따로 마시는 것은 개별적인 신앙의 독립성을 상징한다고 그 뜻을 풀이해줬는데 꽤나 괜찮은 신학적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주는 포도주가 아니고 무슨 포도 주스도 아니고 그걸 물에 탄 것도 아닌 아주 심심한 맛이 났는데,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기도를 하고 또 우리는 일어나 O come, O come, Emmanuel을 또 불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찬양은 대림주간(Advent)에 가장 많이 불려지는 찬송 중 하나였다. 파송을 위해 목사가 축도를 하고 성가대가 폐회송을 부르며 나가기 시작했다. 회중들은 모두가 그대로 서 있다가 목사가 지나갈 때에 비로소 자리에 앉았으며 역시 오르간의 후주가 진행되었다.

 

두 교회의 예배의 형태와 진행 방식은 비슷한 점도 있었고 다른 점도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장로교의 예배를 드린다고 했을 때 꽤나 놀라워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다든지, 한국 교회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든지. 나도 사전에 알게된 지식들 덕분에 다른 교회의 전례를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지, 만일 어머니 모시고 왔다면 꽤나 많은 혼란 가운데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두 번의 예배를 통해 과연 우리가 하나님/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과연 교회와 예배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의 일치는 어떠한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전혀 헛된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매주 드리는 예배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가 늘 이렇게 가슴 속에 기억되고 특별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매주 주일 예배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아참. 혹시나 몰라서 밝혀두는 것ㄴ데 나는 빵과 잔을 헛되이, 그리고 망령되이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