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씻고 밥을 준비하는동안 양말과 속옷들, 그리고 한두개의 수건을 함께 세탁하려고 세탁기에 한데 집어넣고 19분짜리 급속 코스를 돌렸다. 그런데 19분이 지나도 세탁 과정이 끝날 때 으레 나오는 그 멜로디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무슨 문제가 생겼나 하고 그 추운 베란다로 나가보니 아니 글쎄 세탁에서 헹굼으로 넘어갈 때 분명히 물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세제가 풀린 물이 아직도 세탁 통 안에 버젓이 남아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헹굼 과정을 돌려보니 통은 제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통이 돌아가면서 물을 모두 빼내고 중간 중간 물이 부어지면서 다시 헹구면서 물을 빼내야 하는데 도무지 물이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탈수 기능은 아예 마비가 된것마냥 전혀 작동이 되지 않는다. 처음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짜증나서 그냥 다 버려둔 채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차마 알량한 책임감에 그럴 엄두가 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의견을 구하고 찾아보니 추운 겨울날인지라 배수관이 얼어서 생긴 문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정말이지 탈수 기능 버튼을 누르면 마치 기계 전체가 얼었던 것처럼 이상한 얼음 갈리는 소리가 같은 게 나서 이거 뭔가 추위 때문에 생긴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드렁ㅆ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세탁물을 다시 다 빼내고 ― 추운 겨울날 베란다에서 차갑게 식은 세탁물을 차가운 물 속에서 꺼내려고 손을 휘휘 젓다보니 손이 다 얼었다. 동상 걸리는 줄 알았다. ― 바가지로 세탁 통 안에 들어가 있던 물을 하나씩 퍼 담아 베란다 바깥에 부어 버렸다. 그냥 빨래를 없었던 일로 해 버리자! 하지만 세탁 통 내부의 물을 깨끗하게 비워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이대로 자리를 뜨고 나면 세탁 통 내부의 물은 다 얼어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늘 귀국하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 상황을 보고 난감해 하실 것이 아니겠는가.


눈을 돌려보니 옆에 보일러와 세탁기에 연결된 수도꼭지가 있었고 하나는 냉수, 다른 하나는 온수였다. 냉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는 호스에만 연결되어 있었지만, 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는 가지가 쳐져 있어 밖으로 온수를 뽑아낼 수 있었다. 나는 세탁 통의 물을 퍼내던 바가지에 그 온수를 담아 세탁 통 안에 부어 넣었다. 세탁 통은 어느새 온수로부터 모락모락 피어난 김으로 그득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헤어 드라이어를 꺼내 보일러와 세탁기가 연결된 콘센트에 연결하여 전원 공급을 시킨 뒤 강한 열풍을 발생시켜 세탁기에 연결된 고무 배수 호스와 최종적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관을 번갈아가며 데우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이게 왠 고생이람.


그리고 한 10분 지났을까? 갑자기 배수관에서 물이 퐁퐁 솟아나면서 기계와 호스에서 별안간 얼음 깨지는 소리들이 마구 들리기 시작했다. 세탁 통의 수위가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한다. 만세! 탈수 기능이 정상화되었다! 지난 며칠간 너무 추워서 배수 호스로부터 배수관까지 통째로 얼었던 것이 분명하다. 슬프게도 배수 호스를 통해 나온 물은 원래 연결된 배수관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샘물처럼 솟아나와 베란다에 있는 다른 배수관으로 흘러가 빠져나갔다. 세탁기에 연결된 배수관은 아래에서부터 통째로 꽁꽁 얼어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만세! 해결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쾌재, 그리고 해냈다는 성취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제서야 집을 나서 학교로 향했다. 이 빨래 때문에 2시간을 허비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