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읽고 있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s'도 한 200쪽 읽었다. 몇 쪽 더 읽으면 중세 기독교 사상 이야기까지 다 읽게 된다. 교회사에서 중세 교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비하면 조금 까다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신앙적인 기반에는 보통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로 대변되는 신(新)플라톤주의(Neo-Platonism)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듯싶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전능하신 신의 개념과 그리로부터 파생된 이분법적인 사고는 모두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과 그리 먼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중세 시대를 주도한 아퀴노(Aquino)의 토마소(Tommaso)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기반으로 이성을 통해 궁극적인 제1원리인 신에게 다가가는 신학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며칠에 걸쳐서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읽었지만 정확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부러지게 말하기가 참 어렵다. 마치 내가 잘 모르는 양자역학의 서로 다른 이해와 배경을 논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대략적으로 '이 사상가는 이렇게 생각한다.' 혹은 '이 사조는 이런 것을 중심에 두고 설명한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세부적인 것을 논하기에는 아직 철학적인 이해가 부족한다. (물론 내가 철학자, 신학자도 아니니까 이런 것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논변하기는 힘든 것이 당연하겠지..)


플라톤의 저서로는 '국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은 적이 있다. 생각보다 '국가'는 이해하기가 쉬웠다. 왜냐하면 아주 지나칠 정도로 이상적인, 혹은 그야말로 허황된 '선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국가 건설이라는 것을 가정해 놓고 읽다보면 가끔 황당한 이야기나 희한한 개념이 나오더라도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여 생각하게 하는 한편, 차근차근히 분석적으로 왜 적절한 중용(中庸)을 택해야 하는가를 논하여 나를 매우 피곤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신학 사상의 논조도 그와 같다. 신플라톤주의의 내용은 뭔가 신비적인 구석도 있고, 우리가 '종교'라고 했을 때 으레 가정하는 '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같은 것들이 필수적으로 저변에 깔려있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라인은 이성과 논리의 힘으로 신을 직관하려는 경주를 펼쳐 보는 이를 매우 지치게 만든다.


아직 내가 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겠지. 일단 이 책을 1월 내에 다 읽고 또 읽어서 좀 더 잘 이해해야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었던 철학, 인문학 서적들도 좀 오랜만에 다시 다 읽어봐야겠다. 한두번만 읽어서는 이게 전혀 와닿지 않으니. 당연한 거겠지 물론...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