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가보겠노라고 벼르고 별러왔던 독립문(獨立門) 기행을 오늘에야 해낼 수 있었다. 감사 성찬례가 끝나고 나서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대입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뀐 나는 사당역 버스정류장에서 무작정 내려 4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고, 충무로 역에서 3호선 열차로 갈아타 독립문 역에 이르렀다. 독립문 역 4번 출구에 나와 조금 걷다보니 교과서에서만 봤던 석조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독립문!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 와 봤다.


독립문은 19세기 후반 조선을 노골적으로 속국으로 삼으려고 했던 청 왕조에 대한 독립의 염원을 담아 세워진 문이다. 독립문 앞에는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독립문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 있었던 영은문(迎恩門)의 기둥이다. 중국의 명(明) 왕조와 청(淸) 왕조의 사신은 바로 은혜(恩)를 맞이하는(迎) 문이라는 뜻의 영은문을 통해 왕래하였고, 자연히 영은문은 대청 사대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독립 협회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급속하게 늘린 청 왕조의 간섭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희망했고, 그 염원을 담아 영은문을 헐어버린 뒤 오늘날의 독립문을 세웠다.


작은 독립문은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끄럽게 '나도 서양식 건축물이라구.'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에 새겨진 독립문이라는 글씨, 태극기 문양, 그리고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 그리고 홍예 아래에 보이는 작은 기둥 모두 놓칠 수 없는 독립문의 소중한 아름다운 부분들이다.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120여년 전의 기억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곳, 매우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바로 학교로 돌아갈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들러 전시품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독립문이 지어질 당시 이미 청 왕조는 청일전쟁에서 패퇴하여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였지만 승리자였던 일본제국주의는 결국 조선을 침탈했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그 때부터 시작된 질고의 역사를 뼈아픈 눈길로 바라볼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한민족에게는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가 아니었는가.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자리잡은 서대문독립공원 지역은 바로 그 고난과 역동의 시기를 오롯이 담은 흥미로운 장소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