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버스에 올라 핸드폰으로 기사를 읽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학생이신가봐요? 나는 굳이 디펜스를 끝낸 박사과정과 포닥 중간의 애매한 학생이라고 길고 귀찮게 얘기하기 싫어서 그냥 아 네 하고 얼버무렸다. 무슨 설문조사를 하시는 분처럼 손에는 종이가 들려있었다.


아 학부생이신가봐요. ㅡ 여기서 경계가 좀 누그러졌다. ㅡ 아뇨, 졸업했고 대학원생이에요 *^^* 아 그러시구나. 그리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묻는 말: "교회 다니세요?"


뭔가 저열한 전도 방식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무렵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나 네비게이토요'라고 쓰여있는 것만 같았다. 신실한 형제들과 늘 성경 구절을 외며 천상의 대화를 나누시는 그분들의 생태를 내 모르는 바 아니지. 무릇 상대의 수준에 맞춰 말해야 하는 법. 그가 바울로가 티모테오에게 쓴 서신을 말할 때 나는 은근슬쩍 야고보의 서신을 들먹였고, 구원의 확신이 있냐고 물어보기에 칼뱅의 교리였던 '성도의 견인'을 나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괜한 오해를 하게 하진 않으려고 하'나'님과 하'느'님은 그냥 '주'로 통일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내게 말을 건 그는 나보다 분명 한참 어리다는 것이었다. 그 손에 들려있던 건 설문지가 아니라 방학 중 식당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출력한 이력서였고,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30대 청년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게 '학생'이라고 끈질기게 불렀는데, 마치 요즘 학교에서 13학번이나 14학번이 선배랍시고 인생 경험 얘기해주는 것같은 귀여움과 낯간지러움의 공명에 나도 모르게 파안대소할 뻔했다. 하지만 주님의 자비로 나는 그가 내게서 계속 그와 같은 우월감을 만끽하시도록 했고 나 역시 청종하는 어린 양 코스프레를 맘껏 했다.


이 일화를 들은 친구는 노련한 사탕발림에 당한 것 아니냐며 조소를 날렸다. 하지만 함께 들어간 주점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신분증 검사를 하였고, 나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지갑 속에 숨겨진 운전면허증을 내보였다. 그리고 그 네비게이토 회원의 접근이 계산된 하얀 거짓말이 아니었노라고 정신 승리하기로 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