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사과정의 마지막 관문인 박사학위 논문심사가 있었다. 지도교수님인 손병혁 교수님을 비롯하여 위원장으로 위촉된 남좌민 교수님,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정택동 교수님과 이연 교수님,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오신 송오성 교수님이 한 자리에 모여 심사를 맡아주셨다.  이날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위해 지난 1주간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발표 연습을 여러번 진행했다. 전날 자연대 누수 사고로 인해 2시간 동안 물바다가 된 4층 바닥을 정리하느라 땀을 비오듯 흘리며 물을 퍼낸 여파로 몸은 좀 쑤셨지만 그래도 기분은 상쾌했다. 오후 4시부터 진행된 발표는 약 35분 정도 진행되었고 질의응답까지 합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지난 금요일에 아무것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초안으로 예행 연습을 했다가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발표 자료와 방식을 대거 뜯어고쳤는데 그게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이 발표 자체는 막힘 없이 잘 진행될 수 있었다. 질문도 대부분 적절히 답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내가 답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들은 지도교수님께서 적절하게 응답해 주셨다.


다만 심사위원 교수님들은 나와 지도교수님이 최근에 늘 걱정 혹은 우려하던 그 부분을 정확히 건드리고야 말았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제조한 나노패턴의 물성이나 특성이 어떠한지가 함께 나와 있지 않아 아쉽다는 것이었다. 임팩트가 있는 연구가 되려면, 그래서 높은 저널에 실리려면 내가 패터닝한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어떠한지가 반드시 같이 첨부되어 있어야 하는데 내 연구결과는 그저 만들었다는 것에서 그쳤다는 것이다. 덧붙여 남좌민 교수님은 그 만든 구조마저도 훨씬 더 완벽한 정렬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내 나름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곱씹어보면 그 지적들은 하나같이 다 옳은 말이다. 내 연구주제는 6년여의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것'들을 구현해내는 것에 방점을 두게 되었고, 정작 그렇게 만들어낸 하나의 소재에 대한 깊은 물리화학적인 이해를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난 만들테니 측정할 수 있는 당신이 같이 나랑 붙어서 일해봅시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저 제조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깎고 붙이고 태우고 한 것에 불과하다. 자연과학도로서의 화학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와 같은 일은 썩 좋지 못하다. 물론 공학도로서의 공학자의 입장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연구 자세였겠지만. 이러한 점은 나도 박사과정 후반에 연구결과들에 대한 자연과학계의 평가가 생각보다 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알게 된 일종의 경험적 지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사 학위를 받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위원장의 발언이 공포될 때, 그리고 이어진 심사위원 교수님들과의 악수하던 순간만이 전체 심사 시간들 중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던 평안한 시간이었고, 그 외의 시간은 앞날에 대한 걱정과 짧은 고민들로 점철된 한숨의 시간이었다. 심사위원 교수님들도 아실 것이다. 이 학생은 학계에 남아 공부하길 희망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아실 것이다. 그러려면 연구는 좀 더 깊어져야 하고, 논문은 더 많이 써야 하고, 지금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런 생각을 나도 안 한 것이 아닌데 지난 두 학기 동안 아무것도 더 나아가지 못한 정체된 상황에서 머릿속에서 '이래야 하는데 이래야 하는데'하는 것만 맴도니 종래에는 화딱지가 날 뿐이었다. 내가 이러한데 지도교수님은 오죽 더 그리하지 않았겠는가.

지도교수님도 말씀하셨다. 사실 이 심사를 지난 학기에 했어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단지 학위를 받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오히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말씀을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덧붙이셨다. (사족이지만, 만일 그랬다면 차라리 지난 학기에 이대로 졸업하고 올해는 포닥으로서 활발하게 논문 쓰는 것에만 매진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순간 스쳐지나가긴 했다. 물론 한 학기를 유예함으로써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누릴 수 있긴 했고 그럼으로써 실험실과 내 자신에게도 기여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심사위원 교수님들과 호암교수회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학교에서 적당히 마무리를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박사과정 김성수'가 아니라 '김성수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이지만 기분이 그리 좋은 것 같지도, 그리 불유쾌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학생이라는 방어막 내지는 피할 바위가 없어진 채 민낯으로 사회에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 정도랄까. 그저 무엇인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보다는 무엇인가가 지나갔다는 느낌이다. 그래 어떻게 보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어떤 이들은 이것조차도 그리 버거워했던 것 아니겠는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