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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이번 주말은 유독 따뜻했는데, 혹시 몰라서 말 그대로 'full 착장'을 했다. 애석하게도 청자색 도포는 소매가 짧아 안에 입은 저고리와 창의의 소매가 오히려 바깥으로 나오는데, 와이셔츠의 소매가 양복저고리 밖으로 삐져나오는 게 예의라는 양복과는 달리 한복에서는 그게 좀 멋이 없어 보인다. 아무튼 적당히 수습하고 나서는 머리에 찍찍이 망건을 두르고 탕건을 쓴 뒤 갓을 썼다. 갓머리 정중앙에 달린 은제(銀製) 옥로(玉鷺)에 녹이 잔뜩 슬어 광택을 잃었지만 뭐 그것도 시간의 멋이려니(?) 하며 그냥 가지고 왔다. 마침 호텔 근처에 바로 진주성(晉州城)이 있어서 그리고 향했는데, 진주의 관광 캐릭터라는 수달 모양의 '하모'가 너무 귀여워서 매표소 근처 기념 스토어에 먼저 들렀다. 문화관광해설사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사진을 찍어주시고 이 '하모' 캐릭터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나는 그냥 가기가 조금 민망해서 귀여워보이는 프린팅의 머그컵을 하나 샀다.
진주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강을 끼고 두른 벽이 과연 임진왜란(壬辰倭亂) 3대 대첩을 거둘 만한 멋진 수성(守城)의 장소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6.25 전쟁 때 소실되었지만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재건된 촉석루(矗石樓)에 앉아 멋진 남강과 진주시의 모습을 감상했고, 바로 앞에 있는 의암(義岩)에 내려가 왜장을 껴앉고 순국했다는 논개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성내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에 들러 임진왜란 관련 전시물도 보았다. 진주성을 둘러보고 중앙시장에 있는 천황식당(天皇食堂)에 들러 육회비빔밥과 불고기를 먹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적지 않아 무척 만족스러웠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망진나루에서 김시민호라는 작은 유람선을 타고 남강을 30분간 돌며 경치를 구경했다. 진주는 인구가 적지 않은데도 강변이 무척 깔끔해 보이는 것이 살기 좋은 동네처럼 보였다. 다음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등축제를 할 때 꼭 한 번 다시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익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표지판에 이끌려 무작정 함양(咸陽)에 있는 남계서원(南溪書院)을 들렀다. 날이 더워서 청자색 도포와 청록색 답호를 벗어둔 채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서원을 보니 도포는 입고 둘러보는 게 선비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리나케 같이 가져온 흑색 홑도포를 가볍게 둘렀다. 남계서원 내부는 공사중이긴 했지만, 문루(門樓)와 더불어 강학의 장소인 명성당(明誠堂)은 둘러볼 수 있었다. 내친 김에 근처에 있는 한옥마을에 들러 조선 중기 문신인 정여창(鄭汝昌)의 생가였던 일두고택(一蠹古宅)을 둘러보았다. 이 집은 '미스터 선샤인'과 같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는데, 드라마를 안 봐서 잘 모르긴 하지만 '문헌세가(文獻世家)'라고 쓰인 사랑채가 무척 근엄하면서도 따뜻해 보였다. 이것이 한옥의 멋이지!
그렇게 진주와 함양을 둘러본 뒤 익산으로 돌아왔다. 익산에 돌아오니 며칠간 집을 비우는 동안 배송된 책상, 어지럽게 대충 바닥 위에 쌓아둔 빨랫감, 그리고 학회 일정동안 입었던 옷과 한복을 정리하느라 꽤나 많은 시간을 썼다. 한복 유람을 하니 조금 버겁기도 했지만 역시나 즐거운 기행이었다. 정신 없는 한 주를 마무리하니 벌써 12월이네. 12월도 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